ATM에 카드 복제기·몰카 누군가 정보 빼내고 있었다

입력 2015-03-05 02:13
2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지난달 16일 오후 3시40분쯤 서울 가산동 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부스로 들어서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위 사진). 이 남성은 소형 카메라를 부스 천장에 달고 카드 복제기를 설치한 뒤 3분 만에 사라졌다. 금천경찰서 제공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17일 오전 10시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관리업체 직원인 김모(45)씨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은행 영업점 옆에 설치된 ATM을 점검하러 들렀다. 카드 투입구 위에 낯선 물건이 눈에 띄었다. 접착테이프로 덧댄 알루미늄 장치였다. 카드 투입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일반 이용자는 식별하기 어렵지만 매일 점검하는 김씨 눈은 속일 수 없었다. ATM 부스 바로 위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소형 카메라가 붙어 있었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김씨의 신고를 받고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투입구에 장착돼 있던 낯선 물건은 카드 뒷면의 마그네틱 띠를 읽어내 불법으로 카드를 복제하는 장치였다. 이용자가 카드를 투입구에 넣으면 ATM에 들어가기 전에 덧대어진 이 복제기를 거치도록 설치했다.

경찰은 복제기가 카드 마그네틱 띠에 저장된 정보를 읽어낸 뒤 내부 칩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마그네틱 띠에는 카드번호, 유효기간, 소지자 이름이 저장돼 있다. 천장에 달린 흰색 소형 카메라는 카드 앞면의 동일한 정보를 영상으로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누가 이런 대담한 짓을 했을까. 경찰은 인근 CCTV를 분석해 지난달 16일 오후 3시40분쯤 2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성 한 명이 이곳에 카드 복제기와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을 확보했다. 불과 3분 만에 설치작업을 마무리하고 사라졌다. 경찰은 이 남성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범인은 마그네틱 띠에 저장된 정보가 암호화돼 있지 않아 복제가 쉽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2012년부터 마그네틱 카드를 보안성이 뛰어난 집적회로(IC) 칩 카드로 교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ATM에서 마그네틱 현금카드 사용이 중지됐고, 5일부터 마그네틱 신용카드를 이용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이 중단된다.

하지만 과도기라 IC 칩 카드 뒷면에 마그네틱 띠가 있는 겸용 카드가 통용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 가맹점에서 마그네틱 카드 기반의 단말기를 쓰고 있고 편의점 등에 설치된 ATM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하다”며 “비슷한 수법의 범행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피해는 없다. 복제기 설치 후 이틀 동안 8명이 이 ATM을 이용했지만 범인이 회수해 가기 전에 복제기가 발견됐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발견 직후 고객들에게 알렸고 모두 카드를 교체하고 개인정보 등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회수한 카드 복제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작동 방식과 카드 정보 저장 여부 등을 분석토록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처음 확인된 범행 수법이어서 복제기의 제작·유통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며 “용의자를 검거하면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