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형섭 (10) “한국인 목사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세요”

입력 2015-03-06 02:55
라이베리아 오지 마을에서 몸이 아픈 아이를 안고 기도하는 조형섭 선교사

2008년 정커팜 지역에 개척한 은혜교회로 예배드리러 갈 때의 일이다. 교회 앞에서 나를 맞는 성도들이 보일 때쯤 갑자기 내 차 앞으로 장정 10명이 뛰어왔다. 네 명은 들것을 들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코리안 파스터(한국인 목사)! 여기 사람이 죽어 갑니다!”

현지인과 동일하게 내전을 겪은 외국인으로 유명해진 나는 사람들에게 이름 대신 ‘코리안 파스터’로 불렸다. 들것을 보니 한 여인이 누워 있는데 담요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장정들 중 한 사람이 이 여인의 남편이었다. 그는 출산하다 출혈이 심해져 아내가 이렇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목사만이 아내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나를 만나러 2시간 동안 죽기 살기로 뛰어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이 여인을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설교를 부탁하고 여인과 장정들을 차에 태워 병원을 향해 달렸다.

그 지역에서 가장 가까웠던 엘와 병원까지는 차로 족히 40분을 가야 했다. 여인이 부디 조금만 더 견뎌주기를 애타게 기도하며 병원에 도착하니 관계자들이 차를 멈춰 세웠다. 나는 급한 환자가 있으니 빨리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가 차 안 여인의 상태를 보더니 손을 내저으며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들은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그저 병원에서 나가라고 했다. 제발 도와 달라고 간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병원을 찾았다. 20분 만에 어렵사리 두 번째 병원을 찾았는데 이 병원 의료진도 ‘수혈할 피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다’며 여인을 환자로 받지 않았다. 여인이 과다출혈을 한 지 3시간 가까이 지났다. 이제 더 이상 갈 병원도 없었다. 나는 의사를 붙잡고 매달렸다.

“나는 한국에서 온 목사요. 환자가 피를 흘린 지 3시간이 넘었소. 이 여인은 당신 나라 사람 아니오? 당신 나라 사람이니 당신들이 책임지고 살려주오!”

간곡히 부탁했지만 의사는 차갑게 손을 내젓고는 병원 응급실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온 사람들은 “우리가 요청해봤자 들어주지 않으니 목사님이 도와 달라”며 날 붙잡고 울며 사정했다. 나 역시 죽어가는 여인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병원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외쳤다.

“이 환자를 치료하지 않으면 정부에 보고하겠소! 만일 이대로 방치해 환자가 죽으면 내일 기자들을 불러 모든 사실을 밝힐 것이오!”

그러자 의사와 간호사들은 겁에 질려 다시 병원 문을 열었다. 의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나오더니 “알았으니 조용히 해 달라”며 여인을 환자로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간절함에 응답하셨다. 여인은 치료 받아 두 달 후 무사히 퇴원했다. 여인과 남편은 커다란 자루에 옥수수 호박 바나나 고구마 등을 가득 가져와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목사로서 말씀으로 영혼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리라. 주께서는 할례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노라고 하시며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전쟁 빈곤 질병 재난 등 온갖 종류의 고난이 있는 땅, 라이베리아. 인생에서 강도 만난 이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날 머나먼 이 땅에 보내셨다고 믿는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