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가상승률 사실상 마이너스라는데

입력 2015-03-05 02:40
디플레이션의 징조가 가시화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물가가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마이너스”라면서 “디플레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최 부총리는 이어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도 공식적으로 디플레 상황은 아니라고 하는 정부로서는 이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문제는 기업, 금융권, 가계는 물론 심지어 정부마저 아직 디플레와 싸우기는커녕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0.52%에 그쳤다. 올해 초 담뱃값을 2000원 올린 게 물가 상승에 0.58% 포인트 기여했으니 이를 빼면 실제 물가는 1년 전보다 0.06% 떨어진 셈이다. 디플레는 전반적인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6개월(일본) 또는 2년(IMF) 이상 물가가 하락하는 경우를 디플레로 정의하는 것을 감안하면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가 오랜 경기 부진으로 인한 수요 감퇴 탓에 올 들어 급속히 활력을 잃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최 부총리는 물가 추가 하락과 수요 감소의 악순환이 몰고 올 위험을 잘 알고 각 경제주체에 경고를 한 셈이다. 그러나 그가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어 임금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는데도 삼성그룹은 최근 임금과 투자는 동결하고 배당은 올렸다. 삼성그룹의 임금동결은 산업계 전체의 임금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업에 임금, 배당 및 투자 증대를 요구하는 목적은 가계소득 증대와 이에 따른 소비 활성화다. 그런데 기업이 배당만 올리면 소비진작 효과는 거의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주주의 63.1%는 외국인이고 소액주주 지분은 11.6%에 불과하다. 외국인투자자나 기관투자가, 주식 부자들의 소득 증가분은 좀처럼 국내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장을 주도하는 특정 기업이 정부 정책과 정면으로 엇박자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디플레를 겪어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처럼 집값과 땅값이 반 토막 날 때 현금을 은행이 아닌 금고나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대비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가격 상승 기대감을 키워놨다. 덕분에 부동산 시장과 증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실물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짝 반등에 그칠 수밖에 없다. 최 부총리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계대출을 늘리고 있는 금융권도, 저금리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계도 부풀어난 거품이 터질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시그널을 바꿀 타이밍과 유사시 비상계획 수립을 검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