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푹 빠진 기감 은퇴 목사들… 매달 특별강좌 ‘늘푸른아카데미’ 94번째 진행

입력 2015-03-05 02:10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중앙교회에서 열린 ‘늘푸른아카데미’에서 ‘기독교와 현대사회’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매달 세 번째 목요일 오전이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 있는 중앙교회에는 백발이 성성한 은퇴 목회자들이 모인다. 날씨가 춥거나 폭우가 쏟아져도 거의 매번 100명에 달하는 은퇴 목회자가 예배당을 찾아온다. 감리교 은퇴 목회자를 위한 ‘늘푸른아카데미’ 특별강좌를 듣기 위해서다.

늘푸른아카데미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역임한 김봉록(90) 목사, 서울 효창감리교회 원로목사인 김연기(82) 목사 등이 의기투합해 열고 있는 일종의 인문학 강좌다. 2007년 6월 처음 시작한 행사로 매달 빠짐없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김태영(66) 전 국방부 장관, 김동길(87) 연세대 명예교수 등 우리 사회 명사들이 연단에 올라 자신의 신앙 이야기와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지난달 26일 늘푸른아카데미 현장을 찾아가 강연을 참관했다. 매달 세 번째 목요일에 열리지만 지난달은 설날 연휴(18∼20일) 때문에 행사가 일주일 순연됐다. 오전 10시쯤 교회에 도착했는데 예배당 앞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70∼90대 은퇴 목사들 수십명이 행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도 수원 수원영화교회 양승순(83) 원로목사는 예배당 앞에서 안내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강좌가 열릴 때면 경기도 부천 자택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한다.

“은퇴 목회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어두워요. 황혼의 외로움만 느끼며 살아가는 거죠. 그런데 매달 한 번씩 여기에 와서 좋은 강사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죠. 삶의 생기를 되찾는 기분, 젊어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웃음).”

강연이 시작되기 전엔 늘푸른아카데미의 실무를 도맡는 김연기 목사도 만날 수 있었다. 은퇴 목회자들에게 늘푸른아카데미 참가를 독려하는 메일을 보내고 강사 섭외를 진행하는 게 김 목사의 일이다. 그는 “늘푸른아카데미를 열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2007년 6월부터 꾸준히 강좌를 열고 있어요. 오늘이 94번째 강좌입니다. 저를 비롯한 몇몇 목회자들이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진행될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이날 강사는 ‘한국 철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김형석(95) 연세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세속화된 한국교회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사람을 섬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며 “교회가 이것만 가르쳐도 우리 사회는 정직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배당에 모인 은퇴 목회자들은 노교수의 열강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