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본회의 통과] 소비 위축·자영업 타격 불가피…투명성 강화 긍정 효과

입력 2015-03-04 03:06 수정 2015-03-04 09:24
김영란법이 통과된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상품권 판매처.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백화점 상품권의 주 고객인 기업들의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김영란법’이 3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골프장, 고급 술집 등을 중심으로 내수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 시행은 1년6개월 후의 일이지만 당장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 심리가 더 위축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공직자 골프 금지령을 푼 것과도 엇박자라는 지적이다.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투명해져 중·장기적으로는 성장률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 경제 심리적 타격 불가피할 듯=김영란법은 공직자, 언론사 직원, 교직원 등에 대해 직무와 관련 없이 1회 100만원 또는 1년에 300만원을 넘는 금품의 수수, 요구, 약속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가의 접대 문화가 이뤄지는 골프장이나 고급 음식점, 술집 등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주말 접대 골프는 그린피, 캐디피, 카트비 등을 합쳐 통상 1인당 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와 간식, 식사 등을 합치면 비용은 이를 넘어설 수도 있다. 기업 관계자가 접대를 하기 위해 자주 들르던 고급 술집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양주 1병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술집의 경우 1번의 접대만으로 100만원을 넘을 수 있고, 1인당 수십만원씩 하는 고급 음식점도 같은 사람에게 몇 차례 접대할 경우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 영세 음식점이 많은 국내 경제 구조상 고급 음식점 등의 소비 위축이 하방효과로 이들에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명절 선물 수요가 줄면서 유통업계 타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중심으로 상품권이나 선물 판매가 급격히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수 위축 등 현 저성장 국면이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 김영란법 후폭풍은 우리 경제에 단기적 타격이 될 수 있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급 수주 거래가 많은 건설업이나 IT·화공·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들이 법 시행 초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설 명절 선물문화 등이 사라지면서 급격히 소비가 위축되고, 해당 분야의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사회 투명성 향상으로 성장률 제고 전망도=긍정적 효과를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거래의 투명성이 확보돼 우리 사회의 부패가 줄어들면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2년 ‘부패와 경제성장’ 보고서에서 한국의 청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만 되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4%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패는 공공투자와 관련한 정책결정 과정을 왜곡시키거나 민간투자 활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이 연구기관이 1995∼2010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를 토대로 OECD 국가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과의 관계를 분석해본 결과, 지수가 1% 오를 때 1인당 명목 GDP는 연평균 0.029%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우리나라 부패인식지수는 55점으로 OECD 34개국 평균(68.6점)보다 크게 낮았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서 경제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기업들은 알게 모르게 뇌물 성격으로 드는 비용이 많았다”며 “김영란법이 시행돼 우리 사회가 더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국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음성적인 거래도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경제 활동의 원칙을 세우고 공정한 거래를 통해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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