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형섭 (9) 간호장교 출신 아내는 주께서 예비한 의료선교사

입력 2015-03-05 02:56
조형섭 선교사의 아내 오봉명 선교사가 오지 마을을 찾아 환자를 검진하고 있다. 오 선교사는 간호장교 출신이다.

2005년 당시 18세 소녀였던 ‘수모’의 어머니는 네 번째 남편을 잃고 집안일이 잘 풀리지 않자 무당을 찾았다. 무당은 수모가 귀신이 들렸으니 아이 다리에 상처를 내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그해 라이베리아 오지 마을에서 수모를 만났다. 수모는 상처 때문에 다리 살이 썩고 있었고 걸을 수조차 없었다. 우리 부부는 5년간 꾸준히 수모를 찾아 상처를 치료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무당도 귀신을 쫓는다며 수모 다리에 계속 상처를 냈다. 수모와 병원을 찾으니 의료진은 다리를 절단해야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모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살길을 내셨다. 수모는 한 비정부기구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아 다시 걷게 됐다.

라이베리아에는 의료 지식의 부족으로 전통적 주술에 기대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곳에서 치사율이 가장 높은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고열과 설사를 동반해 탈수로 죽거나 며칠씩 일어나지 못한다. 해열제와 말라리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은 풀을 짓이겨 몸에 바르거나 나뭇잎 삶은 물을 마신다. 고열에 시달릴 때는 뙤약볕에 맥없이 누워 있곤 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우리 부부는 1987년부터 오지 마을을 돌며 약품을 전달했다. 아내는 평균기온 40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치료하느라 매우 고생했다. 그러나 우리가 고생할수록 환자들은 치유됐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들이 연신 고마워하며 복음을 받아들일 때면 모든 고생이 물밀듯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오지 마을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생후 1년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몸은 뼈밖에 없어 앙상했고 눈은 초점이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기를 안고 기도했다. 그리고는 마을 추장에게 우유와 쌀, 돈을 주고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당부했다. 병원에서는 아기의 위장이 상했다고 했다.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란 아기는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해 위장에 상처가 났던 것이다. 나는 추장에게 우유와 쌀을 더 주며 병이 회복될 때까지 아기를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후 다시 가 보니 죽어 가던 아기가 살아 마을을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산골에서 하릴없이 죽어 가던 어린 아기가 우리의 작은 후원으로 살아난 것이다. 이러니 내가 이 일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시골 교회를 찾아가는데 한 여인이 차를 막아섰다. 차에서 내려 연유를 물으니 여인은 갑자기 윗옷을 들추고 불룩 나온 배와 부상 입은 가슴을 가리켰다. 어린 시절 숯불 화덕에 넘어져 크게 화상을 입은 그는 8번 해산했지만 유두가 없어 매번 젖을 먹이지 못해 자녀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번만은 자녀를 꼭 살리고 싶다며 간곡히 도움을 요청했다. 마을 주민들도 그의 딱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출산 후 연락하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한 달 후 여인은 아들을 낳고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아이 이름을 ‘보아스’라 짓고 여인에게 우유를 공급해줬다. 보아스는 건강하게 자라 이제 일곱 살이 됐다. 그 마을만 가면 가장 먼저 뛰어나와 반갑게 맞는다. 마을 주민들은 보아스를 우리 손자라 부른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모든 약한 것을 치료했다. 나는 이 일을 하는 게 선교이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내 눈에 불쌍한 소자(小子)가 보이면 목숨을 걸고 이들을 도울 수밖에 없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