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본질 벗어난 김영란법은 물타기式 입법의 극치

입력 2015-03-04 02:37
여야 합의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과잉입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민간부문을 공직자와 똑같은 잣대로 재단해 법의 생명인 공정성과 형평성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벌써부터 위헌 시비가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야는 원안에 없던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정작 자신들은 빠져나갈 안전장치를 곳곳에 만들었다. 밥그릇 챙기는 데는 여야가 한통속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여야는 당초 1년이었던 이 법의 유예기간을 1년6개월로 연장했다. 현 19대 국회에는 법을 적용하지도, 수정하지도 않고 내년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0대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치졸한 짓이다.

꼼수는 이게 다가 아니다. 공직자가 가족, 친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못하도록 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삭제했고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 법 적용에서 제외시켰다. 포장을 그럴듯하게 했지만 공익이라는 추상적 개념 뒤에 숨어 처벌을 피하려는 속셈이 보인다. 공직자가 돈이나 음식을 접대 받더라도 ‘사교’나 ‘의례’에 해당할 경우 처벌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추상적이고 모호한 조항이 적지 않아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을 남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 법의 치명적 약점이다. 수사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흐를 경우 표적사정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한 자유가 생명인 언론을 권력의 나팔수로 만드는 수단으로 악용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김영란법은 개정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이유다. 협회는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단속하기 위해 만든 법률로 기자를 한 묶음으로 규율할 경우 언론탄압에 활용하거나 언론자유를 침해할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고 지적했다. 물론 기자사회도 지금보다 투명해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금을 투입하는 공영 언론사뿐 아니라 순수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언론사까지 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애초 입법 취지에 어긋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이 “인기영합주의에 꽂혀 합의한 졸렬 입법”이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뻔히 부작용이 예상되는 법안을 시행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 법의 목적은 ‘벤츠 여검사’ ‘스폰서 검사’ 등 직무 관련성 없이 금품을 받은 비리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있다. 본질이 훼손된 김영란법은 애초 취지에 맞게 즉각 개정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