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아니라지만 다시 ‘디플레 논쟁’… 담뱃값 인상률 제외 땐 물가상승률 ‘마이너스’

입력 2015-03-04 02:39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9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나마 올 들어 정부가 억지로 올린 담뱃값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자칫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할 뻔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정부는 유가 하락 등 일시적 영향 탓이라는 입장이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0.5%를 기록했다. 3개월 연속 0%대 상승률에 머물며 15년7개월 동안 가장 낮은 상승 폭을 보인 것이다. 생활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0.7% 낮아져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았다. 신선식품지수도 1.1% 내려갔다.

국제 유가 추락이 직접적 원인이다. 휘발유(-23.5%) 경유(-24.7%) 액화석유가스(LPG·-27.7%) 등 가격이 급락하면서 공업제품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낮아졌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소비 위축이다. 향후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가계부채도 크게 늘어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월에는 설 수요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이 둔화된 것은 그만큼 소비심리가 위축돼 있는 것”이라며 “최근 가계부채가 많이 늘어난 것도 저물가 장기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아직 우리 경제가 디플레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디플레는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상당 기간 지속돼야 하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낮아지진 않았고, 특히 최근 물가 하락세는 유가 하락과 농산물 가격 등 공급 측면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달보다 국산 담배 가격이 83.7%, 외산 담배 가격이 66.7% 오르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58% 포인트 끌어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담뱃값 인상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셈이다.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역시 2.3%로 지난달보다 0.1% 포인트 하락했다. 담뱃값 인상분은 전년 동기 대비로 계산할 경우 올해 계속 추락하는 물가를 지탱해주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경제에 디플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유가와 농축산물 가격 하락이 전반적인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수요 측면에서도 가계소득 정체에 따른 소비 부진과 기업의 투자 부진이 겹쳐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저물가가 고착되면 수요가 침체돼 기업의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이는 생산과 투자를 위축시켜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게 한다. 문제는 경제가 한번 디플레에 빠지면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디플레를 막으려면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일자리 창출, 가계부채 감축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돈을 풀었을 때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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