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선교사로 발령받아 중국에서 입국을 준비 중이던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 신부는 의욕에 넘쳤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한글을 완전히 깨쳤다.
프랑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첫 문장을 한글로 ‘됴흔 져은 누이(좋은 작은 누이)’라고 적었다가 “깜빡 잊고 조선어로 편지를 쓰려고 했군요”라고 멋쩍게 설명하기도 했다.
제6대 조선교구장인 리델 주교가 1881년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어문법서 ‘그라메르 코레엔느(GRAMMAIRE COREENNE·한불문전·韓佛文典)’가 처음 공개됐다.
고서경매사 화봉문고(대표 여승구)는 다음 달 18일 경매에 앞서 서울 종로구 화봉갤러리에서 4일간 일반에 선보인다.
한불문전은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이후 상하이로 탈출한 리델 주교가 현지에서 조선인 신자 김여경 등의 도움을 받아 원고를 마무리했고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간됐다.
리델 주교는 1년 앞서(1880년) 최초의 한국어사전 ‘한불자전(DICTIONNAIRE COREEN-FRANCAIS)’도 요코하마에서 펴냈다. 한불자전의 존재는 전시 등을 통해 알려져 있다.
책은 19×27㎝ 크기, 302쪽 분량에 서론과 품사론, 구문론, 부록, 연습과정 등으로 돼 있다.
특히 중국어와 비교해 한국어를 소개하는데, 예컨대 ‘雲-구름 운’이라고 적은 뒤 프랑스어 발음과 뜻을 병기했다.
한국의 대가족 호칭을 가족관계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다양한 어미변화도 제시됐다. ‘낽랑하다’에 대해 ‘낽랑스럽다, 낽랑스러워, 낽랑스러온, 낽랑스럽더니’ 등이 나와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민담, 야담에서 채록한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풍속, 관습 등을 보여주는 ‘점진적 연습(D’EXERCICES GRADUES)’ 코너다. 백정이 족보를 훔쳐서 양반이 되는 이야기 등 시대상을 담은 해학 넘치는 이야기가 담겼다.
이 문법서는 구한말 국어학자 이봉운이 1897년 한국인 최초로 쓴 한글문법서 ‘국문정리(國文正理)’보다 16년이나 빠르다. 19세기 이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 책을 통해 우리말을 배웠다.
한국어 습득은 성경과 성가 등의 교리 번역 작업에 필수적이었다.
홍윤표 연세대 명예교수는 3일 “이번에 처음 실체가 확인된 한불문전은 우리나라 문법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불문전의 경매 시작가격은 2500만∼3000만원이다. 리델 주교의 견문기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프랑스 선교사 리델의 19세기 조선 체험기’(살림)가 국내 번역·출간된 바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단독] 최초 한국어 문법서 134년 만에 햇빛
입력 2015-03-04 02:05 수정 2015-03-04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