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21세기 아프간 여성 잔혹사… 피난처에 은신한 여성들

입력 2015-03-04 02:45
명예살인 위협이나 학대를 받고 있는 여성들이 머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여성을 위한 피난처’에서 한 여성이 흉터를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의붓엄마가 염산을 뿌려 얼굴이 일그러졌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명예살인(Honor Killings). 이슬람권에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관습이다. 주로 여성들이 순결이나 정조를 잃었거나 부모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때 자행된다. 명예살인은 이슬람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유독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좀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형’ 형벌이다.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아프간 현지에서 전한 피해 여성들의 사연은 과연 지금이 21세기가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해준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는 ‘아프간 여성을 위한 피난처’가 있다. 명예살인의 위협을 받는 여성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아프간에는 비슷한 피난처가 19곳 더 있다.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굴 미나(16)는 가족의 강요로 8세 때 ‘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간 뒤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2차례 도망갔지만 친정오빠가 되돌려 보냈다. 미나는 이후 동네의 한 남성의 도움으로 함께 도망쳤지만, 다시 오빠가 이들을 붙잡아 남성은 죽이고, 미나는 도끼로 얼굴을 내리쳤다. 미나는 이후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해 피난처로 올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10㎝ 정도 길이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파히마(21)의 사연도 비슷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족이 다른 남성과 결혼하도록 강요했고, 이후 이 남성으로부터 도망쳐 피난처로 오게 됐다. 파히마는 요즘 가족과 중재과정을 거치고 있다. 피난처에서 가족을 만나 화해할 경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피난처 중재인들은 3번의 중재 결과 “가족들이 파히마를 집에 데려가 죽이려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가족들은 명예살인을 위해 중재인들에게 뇌물을 주고 딸을 데려가려고도 했다.

파히마가 섣불리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은 2013년 사망한 아미나(18) 사건 때문이기도 하다. 아미나는 피난처에 머물다 가족들이 “죽이지 않고 잘 보호하겠다”면서 데려갔지만, 피난처를 나온 당일 무참히 살해됐다.

이 때문에 일시적 용도의 ‘피난처’가 일부 여성에게는 아예 평생 살아갈 ‘집’이 되고 있다. 카불 피난소에서만 26명의 여성들이 살해 위협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다. 피난소 측은 “피난소를 찾는 여성들 중 15% 정도는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살해 의지가 워낙 강해 피난소를 떠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난처는 명예살인 위협과 함께 구타와 학대를 받는 여성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전통이 매우 강한 아프간에서는 남성들이 여성을 때리는 일이 흔하다. 피난처에까지 온 여성들은 그 가운데에서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맞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체인으로 등을 맞아 등이 울퉁불퉁해지거나 칼로 얼굴을 베이거나 뼈가 부서져 장애 상태인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은 “지금도 딱딱한 몽둥이가 정강이뼈에 쩡 하고 부딪히는 소리와 바닥에 쿵 하며 내동댕이쳐지던 순간, 얼굴을 실컷 맞아 입안 가득 스며 나오던 피 냄새에 시달리곤 한다”고 토로했다.

피난처가 있으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일까. 현지 여성들은 “무서워 문밖에도 함부로 나가지 못하는 피난처에 너무 오래 머물게 되면 이곳이 피난처가 아니라 어느 순간 감옥이라 느껴진다”며 “아프간을 떠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