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외교 총체적 점검 통해 전략적 유연성 높여라

입력 2015-03-04 03:30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의 발언 파문은 미·중·일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외교의 현실과 외교 당국의 능력을 다시 한번 따져보게끔 만든다.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는 셔먼의 발언은 한·중과 일을 구분해서 보는 것이며, 과거사 갈등을 3국 공동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반영한 미 정부 시각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심상치 않은 것은 그동안의 일본 주장을 워싱턴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 여론의 심한 거부반응이 있자 국무부는 별도 논평을 통해 “성을 목적으로 한 일본군의 여성 인신매매 행위는 끔찍하고 극악한 인권위반”이라고 언급했다. 외교적 수사다. 외교의 유일한 목적은 자국 이익이다. 토씨 하나하나에 뜻과 전략이 담겨 있다.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한·일 갈등은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큰 전략 속에서 과거사 문제는 미국에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한·일 모두 미국과 동맹국이지만, 지금 미국은 동북아 안보와 관련해 일본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한국 외교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이명박정부 때 한·미 관계는 전후 최고라는 양국 내부 평가가 있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일본은 이를 상당히 부러워했다. 미·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들은 국방부와 국무부 관료, 로비스트와 싱크탱크 관계자, 의원과 보좌관들에게 막대한 지원과 함께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펼쳤다. 지난해 10월에는 ‘일본 방침이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대외 홍보를 강화하라’는 각의 결정도 내렸다.

박근혜정부는 휘발성이 강한 반일 감정과 대일 관계, 한·미동맹과 대중국 관계 등 이해가 상충하는 외교 현실 속에서 확실한 자리 설정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일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이나 중국 견제 전략에서 앞으로 더욱 찰떡공조를 할 것이다. 셔먼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전략적 유연성이 확실히 떨어지고 있고방향성을 상실한 한국 외교에 대해 총체적인 점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