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序詩)의 주인공 윤동주는 1917년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서울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3년간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최현배의 조선어, 이양하의 영문학, 손진태의 역사 강의를 들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릿쿄 대학과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향을 준비하던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 느닷없이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았다. 죄명은 ‘사상불온, 독립운동, 비일본신민, 서구사상 농후’였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그는 45년 2월 옥사했다. 조국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서다. 28세 꽃다운 나이에 사망한 윤동주의 후기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고 있다.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또 다른 고향’ 등이 대표적이다.
윤동주 70주기를 맞은 지난달 모교이자 시비가 세워져 있는 연세대도 추모행사를 가졌지만 릿쿄 대학과 도시샤 대학에서도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어 일본의 대표적 일간지인 아사히신문은 지난 2일자 통단 사설을 할애해 윤동주를 소개했다. 파격이다. 그가 추구했던 시대정신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접점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단다.
‘일한 국교정상화 50년-비극적인 시인의 생각을 마음에 담아’란 제목의 사설은 작금의 한·일 관계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다만 “아베 정권의 여당이 총선에서 대승하면서 일본 전체가 역사수정주의에 휩쓸린 듯한 주장이 한국에 난무한다는데 그건 단편적인 견해”라고 지적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이 과거 정권들이 인정했던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려 하는 건 엄연한 사실 아닌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게 대표적이다. 윤동주가 노래한 것처럼 지금 일본 정계가 ‘한 점 부끄러움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윤동주를 기리는 일본인들
입력 2015-03-04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