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예의범절 내세워 후배 군기잡기… 볼썽사나운 대학 신입생 ‘FM’

입력 2015-03-04 02:08 수정 2015-03-04 10:44
인터넷에 올라온 “대학교 신입생들이 지켜야 하는 예절”. 선배와의 전화 통화와 인사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

새 학기가 시작된 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학교 신입생들이 지켜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예체능 계열 대학의 한 신입생이 선배로부터 배운 ‘신입생 FM’(field manual·야전 교범)을 인터넷에 올린 것인데요. 보통 대학가에서는 신입생이 지켜야 할 규칙을 군인의 제식 등을 담은 FM에 비유합니다.

형광펜까지 그어가며 정성스레 쓰인 신입생 FM에는 “인사는 상체를 숙인 후, 0.1초 뒤 육성으로. 파도타기는 금지” “약속 시간 40분전까지 모여 과대표, 여자 동기, 남자 동기 순서로 자리에 앉는다” “선배가 보이면 달려가서 인사한다. 인사할 때는 손에 든 것 전부를 내려놓는다” 등이 적혀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 때는 “선배님, 안녕하세요. ○○기 ○○○입니다. 제가 어떠한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라며 공손히 여쭤야 합니다. 선배가 통보받는다는 느낌을 가져서는 안 되는데요. 전화를 끊을 때도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합니다. 선배가 “응”이라고 대답하면 다시금 “안녕히 계세요”라며 재차 인사해야 합니다. 먼저 끊어도 안 됩니다.

과거 선배들은 폭행, 기합, 언어폭력으로 신입생의 군기를 잡았습니다. 요즘 이 ‘군기잡기’가 인사예절, SNS 감시, 복장단속 같은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들었는데요. 폭행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학내 예의범절을 만들어 후배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학 선후배의 규율이 질서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처럼 신입생이 숙지해야 할 예절을 강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학교는 자율 속에서 책임을 배우는 학문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대학가 선배의 모습은 어떤가요? 신입생의 적응을 도와준다며 만든 ‘새터’와 ‘MT’ 등은 성범죄와 폭행의 취약지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한해 대학가에서 신고된 성범죄 156건 중 MT와 수련회에서의 성범죄가 20건이나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최근에도 한 명문대 학생이 술에 취한 신입생 여자 후배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폭행한 일도 있었죠.

인사 안 받아 나쁜 기분은 한순간이지만 성추행당한 후배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배들을 위한 FM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왕 만든다면 “술은 후배들의 몸을 더듬지 않을 정도로만 마신다” “후배에게 성적 불쾌감을 주는 언어는 삼간다” 등 구체적으로 만들어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