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 사람들은 태권도를 좋아한다. 태권도 행사에서 품새 시범을 보이기만 하면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따라한다. 이들이 태권도를 좋아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987년 라이베리아에 도착해 보니 이곳에는 일본 가라테와 중국 우슈 등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다. 태권도는 한국정부가 사범을 파견해 오다 70년대 후반부터 지원을 중단해 널리 보급되진 못했다. 나는 라이베리아에 국위선양과 체력증진, 복음 전파의 통로로 태권도를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는 모두 조국을 사랑했다. 우리 부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애국심이 크다고 자부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태권도 단기선교사들과 라이베리아 여러 마을을 돌며 태권도의 기본을 가르쳤다. 수년간 매일 새벽기도를 마친 후 마을을 돌면서 가르치니 내게 배운 제자들이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아 가르치게 됐다. 70년대 초반 군대에서 딴 태권도 1단으로 사역을 시작했던 나 역시 부단한 노력 끝에 3단까지 올랐다. 지금은 선교센터에 라이베리아 태권도협회 본부를 설치해 라이베리아 태권도 발전에 힘쓰고 있다.
태권도를 전파한 지 2년쯤 지나자 라이베리아 정부가 관심을 보였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태권도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던 때라 그런지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 그 결과 라이베리아 대통령궁 경호실과 경찰학교, 군부대, 정보부, 이민국 등에 태권도가 보급됐다. 현재 라이베리아 전역의 18개 도장에서 국민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 가운데에도 태권도 유단자가 여럿이다. 이들은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데 현 라이베리아 국방부 장관인 사모카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태권도 유단자로서 태권도 발전과 선교 사역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라이베리아 모든 학교에서 태권도 수업을 하게 하는 것이다. 내전 당시 매일 학교에 오던 아이가 체력이 약해져 죽었는데 나는 이 일이 늘 마음에 걸렸다. 아이들 체력을 기르기 위해선 급식으로 영양을 공급할 뿐 아니라 반드시 운동도 필요하다는 걸 이때 알았다. 학생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나는 현재 학교 다섯 곳에 제자들을 파견해 태권도 정규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군대에서 익힌 태권도로 낯선 땅 라이베리아에 태권도협회를 설립해 전파할지 누가 알았으랴. 그러고 보면 태권도는 제자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사범은 태권도 기본을 가르쳐 제자를 기른다. 제자는 체력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며 사부의 말에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또 실력을 쌓은 뒤 새내기에게 배운 것들을 전수하며 사범이 된다. 지극히 성경적인 제자훈련의 원리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말씀으로 영성을 키우고 변화돼 또 다른 이들을 돕는 자로 서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제자들은 나를 ‘태권도의 대부’라고 부르며 어딜 가든 환영해준다. 내가 이들에게 정말 바라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라이베리아 태권도협회에 가입한 1500여명의 제자들은 내전 때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며 치열하게 싸웠지만 지금은 태권도를 배우며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 전투복이 아닌 도복을 입은 제자들이 라이베리아 곳곳에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길 기도한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이들의 곁을 지키지 못할 때 이들도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치유하고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영적 대부’가 되길 바란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역경의 열매] 조형섭 (8) 태권도 보급 통해 국위 선양·그리스도 제자훈련
입력 2015-03-04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