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최대 친(親)이스라엘 로비단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가 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개막했다. 여느 해처럼 수천명의 유대계 미국인과 정치인들이 몰리고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울려퍼졌지만 실제 분위기는 어수선하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AIPAC 관계자들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관심은 공교롭게 행사 기간과 겹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로 쏠렸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초청으로 3일 이란과의 핵 협상을 비난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측이 미 행정부와 일절 상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이스라엘 간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PAC 최고경영자(CEO)인 하워드 코어는 이를 의식한 듯 “언론인들은 미·이스라엘 관계가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위기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똥은 이미 AIPAC 총회로 튀어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조 바이든 부통령, 존 케리 국무장관도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더욱이 전날 뉴욕타임스(NYT)에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전면광고가 실리면서 분위기는 한층 뒤숭숭해졌다. ‘수전 라이스는 맹점(盲點)을 갖고 있다: 그것은 대량학살(genocide)이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강경파 친이스라엘 로비단체 ‘디스 월드’가 제작하고 경비를 댔다. 1994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팀 일원이었던 라이스 보좌관이 80만명이 사망한 르완다 사태 당시 중간선거 영향 등을 우려하며 ‘대량학살’이라는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 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라이스 보좌관이 “네타냐후 총리가 베이너 의장의 미 의회 연설 초청을 수락한 것은 양국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성토한 데 맞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라이스 보좌관이 미국 정부를 대표해 AIPAC 총회에서 연설할 예정인 만큼 모양새가 볼썽사납게 됐다. AIPAC는 이날 성명을 발표, 라이스 보좌관 비난 광고를 실은 디스 월드 측을 비판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도 CNN에 “NYT 광고는 라이스 보좌관보다 광고 지지자들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이번 연설을 계기로 미국 내 유대계 단체 간 분란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면서 중동평화 협상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 단체들이 AIPAC 등 주류 이스라엘 로비단체에 도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유대계 미국인들은 이스라엘 문제가 당파적인 이슈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 반대쪽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케리 국무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의 의회 합동연설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이 행사가 큰 정치적 쟁점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이날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의 협상차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하기에 앞서 ABC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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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의회 연설 역풍 맞은 美 유대계
입력 2015-03-03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