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20)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이른바 ‘일진’이었다. 몇 차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지만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이씨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부모도 학교도 폭력 성향을 눈감아 줬다. 하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학원에 들어간 뒤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씨는 툭하면 격렬하게 화를 냈다. 폭력 성향은 갈수록 짙어졌다. 편의점에서 술병을 마구 집어던지거나 ‘묻지마 폭행’ 등으로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자해를 하기도 했다. 입원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하게 자해를 한 뒤에야 이씨는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씨처럼 ‘인격장애’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한 해 1만명 정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1만3000여명이 인격장애(상병코드 F60∼69)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환자 10명 중 3명(29.5%)은 20대 남성이었다고 2일 밝혔다. 인격장애 환자 3명 가운데 2명은 10∼30대(63.7%)였다. 남성(68.6%)이 여성(31.4%)보다 배 이상 많았다.
◇인격장애, 왜 20대 남성 환자 많을까=인격장애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인격장애가 있더라도 대부분은 스스로 병을 인식하지 못한다. 환자가 알아서 병원을 찾는 일도 거의 없다. 때문에 다른 정신병이나 신경증을 동반하는 경우 인격장애 진단도 함께 받는 식으로 나타난다.
인격장애는 10대 시절 행동장애와 연관이 깊다. 청소년 시기의 비행과 범죄가 자신의 성격으로 굳어지면서 성인이 된 뒤 인격장애 환자가 될 수 있다. 주된 증상은 지나친 의심, 공격성향, 폭력성향 등이다. 심하면 병적인 도박, 방화, 도벽 등을 보이기도 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살인 등 심각한 사회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격장애에 20대 남성 환자가 많은 이유는 증상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입시난, 취업난 등 스트레스 상황에 닥치면 10대 시절 형성된 인격적인 문제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씨를 치료 중인 의료진은 “기본적으로 공격 성향이 강한 상태에서 대입 실패가 겹치며 자해, 폭행 등 극단적인 형태로 인격장애 증상을 보이게 된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약물치료를 하고 있지만 공격 성향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인격장애, 청소년기가 관건=인격장애 진단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완전히 자신의 인격으로 굳어진 뒤에야 인격장애 진단이 나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청소년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공격 성향이나 강박 성향이 있더라도 성인이 된 뒤 인격장애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
인격은 생활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학교 폭력, 인터넷 중독, 알코올 중독 등에 노출되면 인격장애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 입시에 대한 강박과 스트레스도 청소년들을 궁극적으로 인격장애로 내몰 수 있다. 한 번 만들어진 인격장애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1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조성남 을지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0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성향 중 일부가 병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자신의 성향을 잘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며 “인격장애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기획] 불지르고 훔치고 때리고 부수고… 욱하는 사회, 분노의 20대 男
입력 2015-03-03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