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대학원생 맘’은 괴로워

입력 2015-03-03 02:46

“여기서 일을 하는데 왜 재직증명서를 못 준다는 건가요.”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시간강사로 일하는 A씨(33·여)는 지난해 12월 학교 측에 재직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 세 살배기 아이를 집 근처 구립 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우선순위로 올리려면 ‘직장인’임을 증명할 재직증명서가 필수다. 하지만 학교 측은 “시간강사는 엄연히 직장인이 아니어서 재직증명서 발급이 어렵다. 원한다면 경력증명서만 떼어주겠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재직증명서를 내지 않아 일반 대기자로 분류됐고 1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통보해 왔다. A씨는 결국 아이를 친정에 맡겼다. 그는 2일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지위 때문에 아이 키우기가 배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기혼자 대학원생의 ‘어린이집 찾아 삼만리’가 속출하고 있다. 취업난과 학력 인플레로 대학원 진학이 늘면서 기혼자 대학원생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관련 규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고용촉진시설 위탁 공공단체와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근로자 자녀를 우선적으로 받는다. 많은 대학이 시간강사나 연구원직을 겸하는 석·박사과정 학생에 대해 직장인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은 어린이집 입소 순위에서 밀려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서울대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기준 석사과정 대학원생 8169명 중 966명(12%)이 기혼자였다. 박사과정 대학원생 가운데 기혼자는 전체 3186명 중 1544명(48%)으로 절반에 달했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전남대는 지난해 12월 기준 석사 대학원생의 53%, 박사 대학원생의 64%가 기혼자였다. 포항공대도 기혼자 비율이 각각 25%, 32%였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수가 규정의 사각지대 때문에 ‘공부냐 아이냐’를 두고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야 한다. 직장 다니듯 일주일에 닷새를 출퇴근하는 일명 ‘풀타임 박사과정 학생’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대에서 풀타임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모(38·여)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연구실로 출근해 오후 6시가 넘어서야 퇴근한다. 일이 몰릴 땐 야근과 주말 근무도 감수한다. 월급 대신 근로 장학금을 받고, 출퇴근 시간은 엄격히 기록된다.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지만 전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직장인이 아니라서 우선순위에 밀렸기 때문이다. 전씨는 “스스로를 당연히 직장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재직증명서 발급을 거절당해 난감했다”며 “관할 구청에도 물었지만 ‘근로장학금을 정상적인 직장인의 벌이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이모(33·여)씨는 출산 두 달 만인 지난해 3월 휴학계를 냈다. 서울대 어린이집에 대학원생 자격으로 아이의 입소 신청서를 냈지만 “여유 정원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차선책으로 집 근처 어린이집에 직장인 자격으로 신청했는데 제주대에서 재직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이순형 서울대 어린이보육지원센터장은 “현재 교내 정규직 직원만 해도 200여명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근로자들까지 받을 여력이 없다”고 했다.

정부경 임지훈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