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자동차업계의 샤오미 경보

입력 2015-03-03 02:43

2007년 중국 베이징에 유학할 당시 왕징의 한 백화점 폰 매장에서 삼성 휴대전화를 샀다. 당시 우리 돈으로 50만원 조금 넘는 고급 휴대전화였다. 그런데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다 그만 잃어버렸다. 어떤 휴대전화를 다시 살지 고민했다. 삼성이나 LG, 노키아 폰은 가격이 부담됐다. 중국산 폰은 10만∼20만원이었다. 현지 유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중고폰은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결국 시장에 있는 휴대전화 수리점에서 잃어버린 휴대전화의 10분의 1 가격인 5만원짜리 중국산 중고폰을 사서 생활했다.

이후 특파원까지 4년여 동안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에서 확실한 양극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남한 인구와 비슷한 5000만명 정도의 중국 부자들은 부를 과시할 정도로 고가 명품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들은 삼성이나 노키아의 고급폰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서민들, 그러니까 13억 인구의 대다수는 중국산 폰이나 4만∼5만원짜리 중고폰에 먼저 손이 갔다.

5만원짜리 중고폰이 샤오미 성장 배경

샤오미의 저가폰이 무섭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애플과 고급 스마트폰 경쟁을 벌이다 최근에는 샤오미 등 중국 업체의 저가폰 공세까지 협공에 몰려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저가폰을 시작으로 성장했던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이 고급폰 시장까지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이 올해 갤럭시S6 등 고급폰과 함께 갤럭시A 등 중저가 스마트폰까지 양동전략에 적극 나선 것도 애플은 물론 샤오미의 추격을 감안해서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도 휴대전화 시장과 흐름이 비슷하다.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업체가 최고급 차량과 함께 중저가 차량까지 전략적 신상품 생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자동차의 샤오미’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 시장은 물론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 시장인 중국을 겨냥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184만대를 판매한 현대·기아차의 중국 비중 23%가 올해는 25%에 육박할 전망이라니 더욱 그렇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발표한 2014년 자동차 공업 경제의 운영 상황을 보면 중국산 자동차의 무서운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생산 대수는 2372만2900대로 전년 대비 7.3% 증가, 판매 대수는 2349만1900대로 전년 대비 6.9% 늘었다. 생산·판매 부문에서 모두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중국은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자동차 보급이 계속 확대되는 단계에 있다.

이처럼 장기 고성장 중인 중국의 자동차 시장을 기반으로 중국 자동차 업체들도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 1등 업체인 상하이자동차를 비롯해 둥펑자동차, 디이자동차, 비야디(BYD) 등 제2, 제3의 ‘샤오미’급 자동차 업체도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자동차는 지난해 중국에서만 판매 대수가 500만대를 돌파해 558만3700대를 기록했다.

고객 스펙트럼 맞게 다양한 신상품 필요

현대·기아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품질에 착한 가격’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제는 도요타 등 선진 자동차 회사와 중국 자동차 회사 사이에서 협공당할 수도 있다. 특히 가격경쟁력을 가진 상하이자동차 등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좋은 품질까지 따라온다면 난감한 상황일 것이다.

현대차가 중국에 생산공장을 처음 세울 때부터 현장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퇴임한 베이징현대차 노재만 전 사장은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주문했다. 그는 2일 “다양한 고객 스펙트럼에 맞게 최고급부터 중저가까지 끊임없이 신상품을 개발, 생산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