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영화 ‘뉴욕의 사랑’으로 데뷔한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키튼(63)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에 전격 캐스팅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배트맨 2’(1992) 이후 별다른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흐른 2015년, 키튼은 ‘버드맨’으로 제72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훨훨 날아올랐다.
‘버드맨’은 그 여세를 몰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감독상·각본상·촬영상 등 4관왕에 올랐다. 키튼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마치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듯 열정과 후회, 분노와 두려움 등 변화무쌍한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그가 연기한 주인공 리건은 슈퍼히어로물인 ‘버드맨’으로 한때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지금은 퇴물이 된 60세 할리우드 배우다.
주로 하층민의 삶 속에 숨겨진 절망을 파헤치며 사회를 성찰해온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버드맨’을 통해 사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성공의 기준과 자아와의 싸움에 대해 얘기한다. 한물간 배우 리건은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한다. 자신에게 배우의 길을 걷게 해 준 레이먼드 카버 원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오른다.
하지만 주변 여건이 녹록치 않다. 급하게 섭외한 동료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는 사실적인 연기를 강조하며 무대에서 진짜로 술을 마시는 등 기행을 일삼고, 무명배우 레슬리(나오미 왓츠)는 불안감에 떤다. 재활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딸 샘(엠마 스톤)은 자꾸만 엇나가기만 하고, 유명 연극비평가는 공연을 보기도 전에 쫄쫄이 슈트를 입은 할리우드 광대가 싫다며 악평을 쓰겠다고 한다.
리건은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영화는 코미디와 비애, 환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성공의 덧없음 등을 얘기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신랄하면서도 코믹한 각본이 조화를 이뤘다. 미로처럼 복잡한 무대 뒤와 배우 사이를 넘나들며 길게 이어가는 카메라워크(롱테이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 연극 무대와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냐리투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관객들이 미로 같이 복잡하고 폐쇄공포증처럼 숨 막히는 주인공 리건의 입장에서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체를 하나로 이어서 촬영하기로 작정했다. 대본 15장 분량을 한 컷에 담아내는 촬영기법으로 감독의 의도를 뒷받침한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지난해 ‘그래비티’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자신감을 잃고선 “난 존재하지 않아. 난 여기 없어”를 읊조리던 리건이 연극무대를 통해 차츰 자아를 회복하면서 연습실에 붙여 놓은 문구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다.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빛난다.”
극중 리건처럼 재기에 성공한 키튼이 ‘버드맨’으로 국내 흥행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19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아카데미상 4관왕 ‘버드맨’ 흥행도 훨훨 날까?
입력 2015-03-04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