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와 ‘마파도’ ‘맨발의 기봉이’ 등에서 걸쭉한 입담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 배우 김수미(66). 5일 개봉되는 ‘헬머니’에서 욕쟁이 할머니로 주연을 맡았다. 때로는 거침없는 욕설로, 때로는 이태원에서 배운 영어실력으로 웃기고 울린다.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김수미표 ‘욕설 종합 선물세트’를 선사한다.
극중 김수미는 욕의 고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생짜 욕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가 있는 욕을 하는 사람을 찾는 오디션이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전과 3범의 할머니는 이젠 욕을 입에 담지 않고 살려고 했지만 세상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결국 할머니는 ‘헬머니’라는 닉네임으로 ‘욕의 맛’에 출연한다.
김수미는 최근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에서 “얼마 전 뉴스를 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받은 보상금이 겨우 2000원이라고 하기에 정말 욕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2000원이면 차라리 주지를 말지, 우리가 아직 일본보다 경제가 약해서 그런 거죠. 내가 만약 일본에 대고 욕을 하면 한·일 외교 관계가 혹시 어떻게 될까 싶어서 못해요.”
영화는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급하고 상스럽고 듣기 거북한 쌍욕이 난무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하철에서 진상을 부리는 만취 승객에게, 아내를 무시하고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게,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상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던지는 헬머니의 욕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고 정의롭기까지 하다.
랩까지 소화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김수미는 ‘갑(甲)질 횡포’에 시달리는 ‘을(乙)’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건넨다. 그는 “차진 욕을 통해 보름 정도는 약 효력이 있는 그런 진통제 역할을 해 드릴까 한다”고 말했다. 신한솔 감독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는 욕이 아니라 한을 풀고 살리는 욕도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연출의도를 설명했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김수미는 “부모님이 농사짓고 5남매를 키우느라 어머니가 고운 말을 못 쓰셨다”면서 “전라도 사람들은 어렸을 때 소꿉장난을 할 때부터 ‘염병하네, 지랄하네’라고 했기 때문에 리얼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이를 잊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는 “농사꾼 딸로 태어나서 그런지 시골 초가집에서 농사짓고 싶다”고 노후의 꿈을 밝혔다. 청소년관람불가. 108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헬머니’ 주연 김수미, 화끈한 욕 릴레이… 답답한 속이 뻥 뚫리다
입력 2015-03-04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