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지도자 넴초프 피살 파문] ‘푸틴 정적’ 8번째 의문사… 野 “정치적 살인”

입력 2015-03-02 02:58

러시아에서 반정부 인사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가 27일 밤(이하 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하의 ‘숨진 정적 리스트’에 또 한 명이 추가됐다. 러시아 야권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푸틴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어도 그동안 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번 사건은 푸틴에 반대하는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시위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발생했다. ‘추모 및 규탄집회’로 바뀌어 모스크바에서 1일 오후 개최된 시위에서는 “넴초프 살인의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는 목소리가 쇄도했다.

넴초프의 사망 당시 상황을 짚어보면 ‘명백한 계획 암살’임을 알 수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그는 당일 오후 11시40분쯤 우크라이나 모델 출신 여성인 안나 두리츠카야(24)와 함께 모스크바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 다리 위를 걷던 중 차량에서 가해진 총격을 받고 숨졌다. 넴초프가 등에 4발 이상을 맞아 숨졌을 정도로 ‘작심하고’ 살해했고, 특히 크렘린궁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총격을 가하는 대범함을 드러냈다. 두리츠카야는 여행사에서 고위 인사 수행안내 서비스를 해왔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8일 “몇 주 전 넴초프와 직접 통화했다”며 “그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개입해 싸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포로셴코는 “누군가 이 보고서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해 그를 살해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야권 인사 일리야 야쉰도 “넴초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증거를 보여주는 ‘푸틴과 전쟁’이라는 보고서를 만들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넴초프의 변호사는 최근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넴초프는 지난 1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푸틴이 나를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걸 걱정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넴초프는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초대 대통령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제1부총리를 지냈다. 그는 옐친의 후계자로 꼽혔지만 푸틴이 정권을 잡은 뒤부터는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푸틴은 비난 여론을 감안, 발 빠르게 사건 대응에 나섰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청부 살인으로 지적하면서 중대 범죄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 수장들이 직접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푸틴은 넴초프의 모친에게 보낸 전보에서도 “범인들이 반드시 처벌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의혹의 눈초리는 푸틴에게 쏠리고 있다. 이전에도 푸틴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의문의 죽음’을 많이 당했기 때문이다. B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은 “푸틴이 1999년 집권한 이후 넴초프까지 8명의 반정부 인사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