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오세훈법, 11년 만에 수술대에… ‘풀뿌리’ 살리려니 ‘돈 먹는 하마’ 살아날 우려

입력 2015-03-02 02:15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정치자금법의 개정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면서 2004년 이후 11년간 유지되고 있는 이른바 ‘오세훈법 체제’가 대대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부자 정치인에게 유리한 현행법을 바꿔야 한다는 찬성론과 어렵게 가둬둔 ‘돈 먹는 하마’를 다시 풀어놓는 것 아니냐는 반대론이 맞선다. 상당수 학자들조차 오세훈법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어 합리적인 개선책 마련이 필요할 전망이다.

◇지구당 폐지 10여년…풀뿌리 민주주의도 흔들=오세훈법의 핵심은 우선 지구당 폐지다. 지구당 폐지는 고비용 정치를 바꿨지만 풀뿌리 정치 기반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 사무실 혹은 후원회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당원 모임 및 교육을 하거나 선거 관련 논의를 하면 불법이다. 엄밀히 말해 후원회 업무 회의는 사무실에서 하고, 선거관련 회의를 할 때는 커피숍으로 나가야 하는 식이다. 현역의원이 아닌 당협위원장(새누리당) 혹은 지역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런 사무실을 둘 수 없다. 새정치연합의 한 초선 의원은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현행 규정은) 아무도 안 지키고 지킬 수도 없다”며 “국회의원이 당원을 관리하고 양성하는 게 불법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역구 혹은 후원회 사무실 비용에는 월 500만∼1000만원 정도 들어간다. 의원들은 후원금에서 충당하거나 사비로 충당한다. 이러한 구조는 지구당을 사조직으로 변질시키고,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선관위는 개정의견에서 시·군·구당이 직접 당원을 관리하고 당비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중앙당 지원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지구당 부활에 대한 여론은 냉담한 편이다. 지구당 운영비용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여론을 설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여야가 저비용 생활정치,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 돈 정치 우려를 극복할 방안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출판기념회나 쪼개기 후원을 넘어선 해법은 없나=오세훈법은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을 금지했다. 개인 소액 기부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국회의원의 연간 후원금 모금 한도 역시 1억5000만원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돈 가뭄은 상대적으로 돈 없는 ‘생계형 의원’에게 금전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쪼개기 후원과 출판기념회라는 비정상적 관행도 생겼다. 법인과 단체의 후원이 금지되자 각 이익 단체들은 편법적으로 쪼개기 후원금을 넣었는데, 2010년 청목회 사건으로 철퇴를 맞았다. 또 출판기념회를 통해 음성적으로 많게는 한번에 수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가 검찰 수사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선관위는 법인과 단체가 선관위를 통해 1억원까지 기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여야가 대기업 등에 기탁을 강제할 경우 준조세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정당이나 의원에게 직접 후원금을 낼 수 없다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신대 조성대 교수는 “비영리 법인과 비영리 단체가 선관위를 통해 지지 정당이나 의원에게 몇 백만원의 후원금을 내도록 할 수 있다”며 “선관위를 통해 투명하게 감시가 된다면 정경유착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기업이나 노조가 정치활동위원회(PAC)를 선관위에 등록한 뒤 연간 5000달러(약 500만원)까지 정치인에게 기부할 수 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