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할 때 환자들은 좋은 병원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보건복지부 지정', '의료기관인증 또는 JCI 재인증 획득', '응급의료평가 최우수 기관', '심평원 적정성 평가 1등급 병원'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병원을 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듯 각종 의료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성적을 받아온 병원들에서 환자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아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환자에게 최상의 안전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병원들에서 각종 사고가 일어나자 환자들이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부에서 인정한 우수 병원인데…의료 사고는 잦아=의료기관 인증제를 통해 우수한 평가를 받은 일부 병원들에서 환자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0년부터 병원급 이상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의료기관 인증제는 정부에서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관리 수준을 평가해 병원들의 의료서비스를 인정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자면, 이 제도는 환자가 내원할 때부터 퇴원할 때까지 전 과정을 검증하여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인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의료기관 인증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병원은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관리에서 최상의 수준임을 인정받은 것에 다름없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대형병원들은 의료기관 인증제를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검증 받는다.
문제는 정부가 인증한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병원들 중 상당수에서 환자 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보완이 시급한 이유다. 분당에 위치한 A병원은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인증 평가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관리에서 최상의 수준임을 인정받은 곳이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는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한모씨는 조카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한씨의 조카는 고속도로 4중 추돌사고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손상된 데다 머리까지 다치는 중태에 빠져 이 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다. 한씨 설명에 따르면 당시 주치의는 “MRI 촬영 결과 뇌에서 연결되는 신경줄기가 끊어져 식물인간이 될 위험이 있다. 현대의학으로는 수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는 것. 한씨는 “다른 대학병원에 가 전문의에게 MRI 결과를 보여주니, 뇌가 멍들었을 뿐 생명의 지장은 없다고 진단했다”고 설명했다. 알고 보니 A병원의 응급실 담당의사가 MRI 사진을 바꿔서 판독해 오진을 한 것이었다는 게 한씨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의 한마디에 온가족 마음이 오죽했겠느냐. 이 밖에도 입원한 병원에서 과가 다르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수술환자를 돌봐주지 않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며 “많은 환자들이 무지 속에서 당할 것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이런 병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응급의료기관 평가 ‘최우수’ 병원? 의사가 만취 상태로 수술 시행=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인정받은 인천의 B병원 역시 환자 의료사고로 애를 먹었다. 지난해 11월 이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의사가 3살 유아의 턱 봉합 수술을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의사는 수술 당시 위생장갑도 끼지 않았으며 수술 바늘에 실도 제대로 꿰지 못했고 봉합 결과도 엉망이었다고 한다. 그는 전공의 1년차로 당일 응급실 당직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신 진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해당 병원은 음주 수술을 한 전공의와 당직의사를 파면했으며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관계자들도 보직해임 등의 문책을 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이 의료사고와 관련해 해당 의사를 문책하는 정도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운영 매뉴얼이 제대로 작성돼 있는지, 응급실 운영 체계와 시스템의 허점은 없었는지 꼼꼼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응급실은 위급한 환자들을 진료하는 곳이다. 작은 실수 하나로도 큰 의료사고가 될 수 있기에 음주 수술은 그 자체로 크나큰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이에 당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 제66조와 의료법 시행령 제32조 조항을 근거로 해당 의사에 대해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겠다”고 했다.
참고로 B병원은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12년째 최우수 병원으로 선정된 곳이다. 응급의료기관 평가는 시설·장비·인력 법적기준 충족 여부뿐 아니라 응급의료서비스의 질에 대한 지표도 포함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평가받은 병원에 지원금을 제공한다.
이와 관련,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관계자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응급의료기관이라 평가받는 병원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유감”이라며 “이 평가가 실제 응급실 운영과 동떨어진 평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번과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자체 감시기능 강화 차원에서 정례적인 시민모니터링을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발생한 일련의 안전사고를 계기로 환자 안전을 대폭 강화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일명 ‘종현이법’으로 불리는 ‘환자안전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환자 안전 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300병상 이상인 종합병원은 환자 안전을 위한 종합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환자안전위원회를 병원 내에 설치해야 하며 환자 안전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학습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환자안전법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16년 7월부터는 모든 병원에 본격 적용된다.
그러나 환자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한 의료사고 피해자는 “일단 병원에 들어서면 의사들은 더 많은 정보를 지닌 ‘갑’의 존재이며, 환자는 모름지기 ‘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다”며 “환자 안전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병원 평가 뭘 봤을까… 상위 등급도 안전 빨간불 불신만 깊어진다
입력 2015-03-02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