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박모(26)씨는 지난 1월 28일 오후 9시30분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에서 회사 환영회를 마치고 만취 상태로 택시에 올랐다. 잠이 들었는데 서울 구로구 집 앞에 도착하니 바지와 차 문, 바닥 등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요금과 별도로 세탁비 3만원을 더 주려던 박씨를 두고 택시기사가 갑자기 경찰을 불렀다. 그는 “어제부터 택시에 토하면 15만원 벌금을 내도록 법이 바뀌었다”며 “내고 갈지, 경찰서에 갈지 선택하라”고 했다. 결국 몸도 못 가누는 박씨 대신 어머니가 15만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기사는 ‘탈취제 값’이라며 1만원을 더 받아갔다. 박씨는 27일 “당시엔 택시기사가 하도 강경해 15만원 규정이 어기면 안 되는 법인 줄 알았다”며 억울해했다.
지난 2월 택시 승객이 구토 등으로 차를 오염시키면 최고 15만원 배상금을 내도록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의 택시운송사업약관이 개정되면서 기사와 승객의 마찰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강제력 없는 이 규약을 놓고 “배상하라” “무슨 소리냐” 하는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다.
지난 14일 밤 서울 관악경찰서에 50대 택시기사 김모씨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20대 여성 승객이 차에 잔뜩 토해놓고 돈을 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승객은 “얼마면 되겠느냐”며 돈을 줄 것처럼 하다 “1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김씨의 말에 태도를 바꿨다. 말다툼을 벌이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승객이 배상금을 주지 않아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택시조합 관계자는 “15만원은 벌금이 아닌 배상금 ‘기준선’이다. 기사들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조항이다. 하지만 거부하는 승객을 처벌할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가 승인해준 약관은 약관법에 따라 법적 효력이 있어 기사가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상금 15만원을 받아내려면 소송을 내야 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배상금을 강제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데 2월부터 무작정 찾아오는 택시기사와 손님이 많아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기사-승객 실랑이만 늘었다… 택시서 토하면 15만원 배상금 운송사업약관 개정 한 달
입력 2015-03-02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