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 벽두 한반도에는 남북 간 대화의 봇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 대통령은 물론 북한 김정은도 신년사를 통해 대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개월 동안 남북 간 대화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한반도 정세는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대통령과 통일부, 통일준비위원회 등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따라서 남북 간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국 북한의 태도와 입장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스스로의 주장과 선전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에 임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은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과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였다. 그렇다고 북한이 이 같은 전제 조건을 제시했을 때 우리 정부가 자기들 요구를 순순히 수용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으로서 남북대화 재개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나 정책 여부와 관계없이 그들 나름의 목표와 계획에 따라 결정할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요구대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면 대화에 임했을 수 있겠지만, 그것 역시 항구적인 조건이나 해법이 아니다. 결국은 새로운 구실을 찾아내 한·미 간 또는 남한 내부의 보혁 간 갈등만을 부추기는 기회로 활용하려 했을 것이다.
대미·대중 관계 복원의 방편으로 삼을 뿐
둘째, 북한이 남북대화에 임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남북대화 그 자체의 필요성이나 가치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이를 통해 대미, 대중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대화를 조건을 걸어 제안하면서 미국과의 1.5트랙 대화를 실시하는가 하면 중국과의 대화 복원을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핵경제병진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주변국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북·미 대화나 북·중 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북한의 대외관계 원칙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은 남북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북한은 과거처럼 남북대화를 통해 내부 결속과 필요한 지원을 받아내려고 한다. 대화에 임하는 조건에서, 그리고 대화를 통해 일회성 행사나 합의를 성사시킨 대가로 북한은 실제 이상의 보상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박근혜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내외 선전수단을 총동원하여 자신들의 대화 의지를 표명하고, 대화협상과 교류협력 중단의 책임을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으로 돌리면서 최대한의 외교적,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핵무기 능력이나 대남 무력 침공 위협을 최대화하면서 대화나 협력의 가치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리기 위한 밀당인 셈이다.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북 메시지가 중요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계산서는 김정은 시대에 와서 더욱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지도자의 일천한 경험이나 지도자에 대한 적절한 조언이 부재한 상황에서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목표가 과도기적이고 불안정한 정책 구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그러한 북한체제가 하루속히 정상화되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정되고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중단의 책임을 근거 없이 우리 정부의 원칙론에 돌릴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요구에 일희일비,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이 대화를 성사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과)
[한반도포커스-유호열] 남북대화 가로막는 북한의 계산서
입력 2015-03-02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