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올바른’ 역사인식에 매몰된 한일관계

입력 2015-03-02 02:20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맞은 3·1절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에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고 공식 제안했다.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감안하면 꽤나 의욕적인 제안이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가 선뜻 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어서다. 이른바 ‘올바른 역사인식’의 문제다. 이는 한국 정부가 줄곧 제기해온 것이지만 그런 전제 위에서 ‘한·일 신협력시대’를 거론하는 게 되레 답답해 보인다.

3·1절 기념사를 지켜보면서 지난 설 연휴 중 읽었던 사와다 가쓰미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의 ‘한국 반일의 진상’(문예춘추, 2015)을 적잖이 떠올렸다. 이 책에서 사와다씨는 자주 거론되는 ‘올바른’이란 말에 주목하고 한국사회가 지나칠 정도로 도덕주의를 앞세운다고 지적한다. 이 말은 역사인식에서뿐 아니라 인사청문회에서도 자주 나온다고 봤다.

이달 말로 두 번째 한국 재임을 마친다는 그는 어학연수를 포함해 10년이나 서울에 머물렀다. 그만큼 그의 한국사회 분석은 예리하다. ‘올바른…’도 그 하나다. 그는 “일본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런 생각은 일본사회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더 큰 문제는 “일본사회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한국사회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올바른’이란 말은 대단히 추상적이다. 그때그때 평가를 달리하는 기회주의적인 역사상대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사와다씨의 견해는 분명치 않으나 분명한 것은 ‘올바른 역사’에 대한 공통이해가 없는 상황에선 한국이 아무리 ‘올바름’을 강조하더라도 양국 관계는 겉돌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이다.

한국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권위주의 시대의 정책에서부터 사법부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역사바로세우기의 경험을 쌓아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단죄를 받고 독재정권에 저항해 옥살이를 했던 이들에 대한 신원회복과 보상이 이뤄지기도 했다. 분명 한국의 자랑스러운 현대사다.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다르다. 한 나라 안의 논란거리라면 법을 새로 만들어서라도 가능하겠지만 국가 간의 문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베 일본총리가 전후 70년을 맞는 올해 독자적인 ‘아베 담화’를 내놓겠다고 한다. 아베 담화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반성하는 ‘고노 담화’(1993)와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1995)의 계승 여부가 관건이기에 한국에서도 적잖은 관심거리다. 하지만 이 문제는 1차적으로 일본 시민사회의 몫이다. 한국의 관심, 올바름이라는 차원에서의 논평은 2차적일 뿐이다.

과거의 치부를 받아들이고 반성·사죄하는 것도, 사실을 은폐하는 것도 일본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그들이 과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그들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의미, 분명한 지지를 밝히는 정도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주장은 ‘올바른’이라는 추상적인 형용사보다 좀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담아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그간 한국 정부는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조치라야 한다”고만 할 뿐 구체적으로 이렇다 할 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서로 이해 가능한 주장을 담아야 비로소 양국의 협상테이블은 활기가 돌 것이다. ‘올바름’만 외쳐서는 제자리걸음을 면키 어렵다. 외교는 도덕이 아니지 않는가.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