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범행으로 보였던 경기도 화성 엽총살인 사건은 철저한 계획범죄였다. 형(86) 부부와 출동 경찰관을 사살한 피의자 전모(74)씨는 수렵 허가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파출소에서 총기를 반출했다. 사건 직후 발견된 그의 유서에는 “이날을 위해 모두 내가 만든 완벽한 범행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내일이면 수렵 허가기간이 끝나니 경찰서에 총을 입고하겠소.” 27일 오전 8시25분 전씨는 형 집으로부터 930m 떨어진 남양파출소에서 자신이 맡겼던 사냥용 엽총(이탈리아제 12구경) 1정을 찾았다. 전에도 이 파출소에서만 5차례나 총기 입·출고를 반복해 별다른 의심을 사지 않았다.
전씨는 형 부부가 살고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향했다. 목격자 A씨는 “오전 8시30분쯤 전씨가 집 앞에서 형수와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을 봤다. 어르신들끼리 너무 심하게 싸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형수 백모(84)씨의 등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전씨는 한 손에 엽총을 든 채 다리가 불편한 백씨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전 8시41분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전씨는 1층 안방 문 근처에서 형을, 현관 앞에서 형수를 향해 차례로 총을 쐈다. 이들은 모두 우측 가슴에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총성을 들은 며느리 성모(51)씨는 2층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어 오전 9시34분 “난리가 났다. 작은 아버지가 (시)부모님을 총으로 쐈다”며 112로 신고했다.
4분 뒤 이강석(43·경감) 남양파출소장과 이모 순경이 현장에 도착했다. 다른 사건으로 경찰관들이 출동한 탓에 직원이 없어 신임 순경과 함께 직접 나섰다. 2인1조 출동 시 한 명은 총을 소지해야 하지만 총기를 소지한 경찰관도 모두 출동한 상태였다. 이 소장과 이 순경은 권총이 아닌 테이저 건(전기충격기)을 들었고, 급한 마음에 방검복(防劍服)도 입지 못했다.
“작은 아버지, 진정하시죠.” 이 소장은 안면이 있는 전씨를 설득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전씨는 엽총을 쏘며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 소장은 테이저 건을 든 채 현관을 열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씨가 쏜 총에 왼쪽 쇄골 부근을 맞고 현장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이후 전씨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우측 겨드랑이와 가슴에 총알이 한 발씩 관통하면서 즉사했다.
전씨의 에쿠스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세상 누구도 (이 범행을) 전혀 알 수 없고 눈치를 챈 사람도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6시간여에 걸쳐 합동감식이 이뤄지는 동안 유가족들은 10여m 떨어진 주차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신이 수습되기만 기다렸다. 오후 3시40분쯤 시신 4구가 흰 천에 싸인 채 나왔다.
피살된 부부는 이 지역 유지였다. 100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졌다. 자산의 많은 부분은 2008년 남양뉴타운 택지개발 당시 토지 보상금 등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최근 들어 전씨가 수시로 형을 찾아가 “돈을 좀 달라”고 요구하는 등 재산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허리를 크게 다친 며느리 성씨는 헬기로 수원 아주대병원에 이송됐다. 석해균 선장을 수술했던 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이 직접 헬기를 타고 왔다. 성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 중이다.
화성=임지훈 양민철 강희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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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총기 사건 재구성] 재산 문제로 싸우다 난사… 설득하던 파출소장도 참변
입력 2015-02-28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