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인사-이병기 비서실장] 황장엽 망명 때 작전 총괄… ‘천막 당사’ 아이디어 내

입력 2015-02-28 02:45 수정 2015-02-28 18:23
이병기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정보원장 임명장을 받은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병기(68) 국가정보원장은 오랫동안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해 온 최측근 전략통으로 분류된다. 외교관 출신이면서도 정치권에 오래 몸담아 정무적 판단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다.

이 실장은 27일 “어려운 때 대통령을 모시는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깊은 고심 끝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만큼 더욱 막중한 책임감으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비서실장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하고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에서 저의 부족함 때문에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며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노태우·김영삼·이회창에서 박근혜까지=이 실장은 경복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4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주제네바·주케냐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직업 외교관이었던 그는 81년 노태우 정무장관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정의당 총재보좌역,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등을 맡아 노태우 전 대통령을 퇴임할 때까지 바로 옆에서 보좌했다.

박 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이때 시작됐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민간인이었던 박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는데, 안내를 담당한 인사가 당시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이었던 이 실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청와대로 부른 것도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족들을 좀 돌보시라”고 조언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95년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장) 제2특보로 발탁됐고, 96년부터 98년까지 안기부 제2차장을 지냈다. 안기부 2차장 재직 시절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한국 망명 작전을 총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시절 북풍 조작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이회창 전 총재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2001년 한나라당 총재 안보특보로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대선 후보 정치특보를 맡으면서 핵심 측근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른바 ‘차떼기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씻기 힘든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자유민주당에 입당한 이인제 의원 측에게 “대선정국에서 한나라당에 유리한 활동을 해 달라”는 취지로 5억원을 건넨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대선 패배 후엔 사실상 야인생활을 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에 직면했을 때, 당시 박근혜 대표가 이 실장을 먼저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는 박 대표에게 ‘천막 당사’ 아이디어를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실장은 이 일을 발판 삼아 2005년 5월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대선 기간에도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고문으로 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했다. 그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주일대사와 국정원장을 지낸 데 이어 비서실장까지 주요 보직을 3차례나 맡게 됐다.

◇대북·한일 관계 주목=이 실장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험이 두터운 만큼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여권 내에선 그가 외교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박 대통령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실장의 발탁 자체가 국정과제의 무게중심이 통일·외교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인사라는 평가도 있다. 이 실장은 남북관계, 한·일관계 등에서 ‘실용’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장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주일대사를 지냈고 민간과도 소통이 가능해 보다 유연한 목소리를 낼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