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75)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는 육군사관학교(19기)를 졸업한 뒤 26년간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와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1993년 안기부 제2차장을 지낸 뒤 주말레이시아 대사,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등을 역임했으며 2004년부터 울산대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관계학을 강의해 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이 내정자는) 강직하고 국가관이 투철하며 조직 내에 신망이 두터워 국정원을 이끌 적임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1940년생인 이 내정자는 그동안 정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다만 대학교수 신분으로 언론사에 기고문을 발표해 국정원 개혁과 관련된 소신을 피력해 왔다. 그는 2013년 한 일간지에 ‘언제까지 국정원도 권력기관인가’라는 글을 기고하며 “선진국 어느 나라도 정보기관을 권력기관으로 묘사하지 않고 있다. 정무 기능을 과감히 정리하고 국가안보 사안에만 진력하도록 업무 집중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비판했다.
해외 정보기관을 벤치마킹해 국내외 업무를 분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내정자는 지난해 6월 이병기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으로 지명된 직후 쓴 기고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이스라엘 등 선진국들은 해외 파트와 국내 파트를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전담토록 하고 있다”며 “해외·북한을 담당하는 1차장 산하와 국내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를 사실상의 독립청 개념으로 분리·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재판 1심에서 관련자 전원이 실형을 선고받는 등 국정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를 경계하는 기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권력을 옹호하며 논란을 일으킬 만한 주장도 했다. 이 후보자는 2009년 2월 2일 울산대 초빙교수 당시 한 일간지에 ‘용산 참사, 공권력 확립 계기로 삼자’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 “용산 사건과 유사한 폭동이 만에 하나 뉴욕이나 파리, 런던 등 다른 선진국 도심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자”라고 썼다. 용산 참사를 폭동에 비유한 것이다.
이어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화염병과 시너로 격렬히 저항한 공무집행 방해 케이스”라며 “이번 사태는 졸속진압이나 과잉진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법 집행의 격렬한 충돌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비극적 우발사고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청와대 인사-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 18년 만에 귀환… 국정원 정치개입 반대 소신
입력 2015-02-28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