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철공소·성수동 수제화 공장… 고도 성장의 땀과 그늘 예술작품으로 태어나다

입력 2015-03-02 02:35
염승일의 ‘메이드 인 문래’. 서울 문래동에 2년간 살면서 작업해온 작가는 그곳에서 늘 접하는 소재를 갖고 작품으로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땀과 한숨이 밴 철공소 자재들이 기념탑을 연상시키는 듯한 조형물로 재탄생했다.
토머스 트웨이츠의 ‘토스터 프로젝트’. ‘토스터’를 직접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토스터의 해체부터 했다. 부품을 배열한 이 작품은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제작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무대는 서울 청계천이다. 21세기 하이테크 도시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둡고 칙칙한 검은 기계들로 꽉 찬 이 골목에서는 1970년대 노동자의 절규가 아직도 느껴진다. 성수동 수제화 공장 거리와 문래동 철공소도 수공의 작업 방식이 여전히 고수되는 동네다. 이곳 사람들은 철강, 조선 등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 위주의 한국경제성장사에서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으나 묵묵히 제몫을 해온 기술자들이다.

이들의 삶과 사회적 의미를 예술작품으로 만들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까. 흔한 방법은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다. 좀 더 예술적으로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사물학 Ⅱ: 제작자의 도시’전은 이런 질문에 대한 예술가들의 답이다. 참여한 15팀의 방법이 실험적이다. 특히 예술가 혼자 잘난 척 작업한 게 아니라 지역의 수공 기술자들을 참여시켰다.

염승일은 ‘메이디 인 문래’에서 문래동에 굴러다니는 폐철 조각, 드럼통 등을 재료 삼아 노동자에게 헌정하는 듯한 기념탑이나 악기 기능도 하는 조형물로 재탄생시켰다.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문래동 철공소 직원들의 ‘기술’이 사용됐다.

사이트씨잉의 ‘성수동 프로젝트’는 길게는 40년 넘게 ‘구두장이’로 살아온 기술자들의 ‘작품’을 벽에 걸었다. 구두, 운동화, 부츠 하나하나가 아우라를 풍긴다. 그들의 육성도 말 풍선을 붙여 작품처럼 담았다. ‘그래도 아빠는 기술자니까 잘릴 염려가 없어서 좋지?’ ‘이 일은 그만 둘 때까지 배우면서 해야 해’ 등등. 얼굴 사진 속 말 풍선을 읽다보면 고단했던 삶과 자부심이 상상이 된다. 읽는 행위가 곧 보는 행위로 치환되는 것이다.

박경근의 ‘청계천 메들리 아시바’는 디스플레이 방식이 신선하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전시에 맞게 재편집해서 스크린에 투사하는데, 그 스크린이 앞뒤 모두에서 볼 수 있는 투명 비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이 공교육 및 사교육 시장에서 성장해온 과정도 작품화했다. 기계공고 설립, 기능올림픽 참가 등 작가가 채집한 역사적 사건을 칠판에 빼곡히 적은 ‘제작연대기: 1967-2014’는 이런 것도 작품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인상을 관람객에게 줄 것 같다.

1부에서 무겁고 진지했던 작품은 2부, 3부로 가면서 경쾌해지고 위트가 가미된다. ‘베이커 미디어’는 전시실에 TV요리코너를 옮겨온 듯하다. 제빵 도구가 있고 실제 빵을 만들어 시식행사도 벌인다. 빵이라는 음식이 진부하지만 성스러운 만들기의 본질을 담아내는 최적의 사물이라는 생각을 담았다. 토스터기를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영국 작가 토머스 트웨이츠는 폐플라스틱을 녹이고,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하고, 절연제인 운모를 채집하는 등 원시적인 방법을 써서 토스터를 만들었다. ‘토스터 프로젝트’라는 이 작품을 위해 1200파운드(약 200만원)가 들었다. 과소비의 폐해를 꼬집는 작품이다. 6월 28일까지(02-2188-6000).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