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불황에… 화랑-경매사 ‘밥그릇 싸움’ 재부상

입력 2015-03-02 02:34
불황 타개를 위해 옥션의 경매가 늘어나면서 미술시장의 양대 축인 화랑업계와 옥션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서울옥션 강남점 ‘마이 퍼스트 컬렉션’ 프리뷰 전시장을 찾은 고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는 장면.국민일보DB
‘신진 작가 시장까지 넘보는 경매사에 화랑 고객 다 뺏길라.’

국내 미술시장의 양대 축인 화랑과 경매사(옥션)의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하고 있다. 2007년 화랑들이 나서 옥션 규제에 나선 지 8년 만이다.

화랑업계 이익을 대표하는 박우홍(63·동산방화랑 대표) 신임 한국화랑협회장은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술품 경매시장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투자 열기가 과열되고, 화랑이 해야 할 1차적 시장 기능과 충돌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앞서 26일 신임 집행부 구성 후 첫 이사회를 갖고 주요 안건의 하나로 옥션 규제안을 논의했다. 연간 경매 횟수 제한, 제작시기 5년 이내 작품 경매 제한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됐다. 이사회는 열흘 후 다시 모여 의견을 수렴한 뒤 경매사측에 화랑업계 입장을 전달키로 했다.

◇곪은 불만이 터졌다=화랑업계의 오랜 불만이 지난달 중순 새 회장 체제가 본격 가동한 걸 계기로 터져 나온 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다. 불황이 길어지자 옥션은 메이저 경매 외에 온라인 경매, 테마 경매를 실시하며 횟수를 늘렸다.

A화랑 대표는 “경매가 늘어나며 미술시장하면 옥션이라는 인식이 생겨나 화랑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며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커팅에지’전· 자선 경매까지 마련하는 등 노골적으로 작가와 직거래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술시장은 개인전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고객에게 소개하는 1차 시장인 화랑과 한번 거래된 ‘중고 미술품’을 거래하는 2차 시장 옥션으로 구분된다. 옥션의 공격 경영으로 경계가 흐려지고 화랑 영역이 침범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잦은 옥션 거래가 가격 왜곡까지 부른다는 비난도 나온다. B화랑 대표는 “작가의 신작전을 시작했는데 다음 날 옥션에서 그 작가 2∼3년 전 작품이 반값에 쏟아져 당혹스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박 회장은 “화랑은 작가의 가치를 발견하고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가격으로만 평가하는 옥션 위주로 시장이 흘러가다보면 작가들도 성장 기회를 잃는 등 피해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옥션의 화랑 경영도 시장을 왜곡”=서울옥션과 K옥션은 특수관계를 통해 화랑을 갖고 있다. 서울옥션 이옥경 대표는 창립자인 이호재 가나아트재단 이사장의 여동생이고, 가나아트 갤러리의 이정용 대표는 이 이사장의 아들이다. K옥션 도현순 전무와 갤러리현대의 도형태 부사장은 형제다. 유럽에서는 이에 대해 엄격해 세계 최대인 스위스 바젤아트페어의 경우 옥션이 운영하는 화랑의 페어 참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화랑업계는 옥션이 특수관계 화랑의 전속(관리) 작가 작품을 집중 거래함으로써 가격 뻥튀기 등의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달 예정된 두 옥션의 경매에도 집안 화랑의 ‘전속 작가’ 작품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C화랑 대표는 “집중 경매를 통해 특정 작가의 작품을 끌어올리는 등 ‘작전’도 가능한 구조”라며 “공정거래 위반의 소지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옥션, “명백한 불공정 아닌 걸 문제 삼아선 안 된다”=K옥션 이상규 대표는 “전속 화가라도 고객이 팔려고 내놓는 것까지 막을 수 없지 않느냐”며 “전속 여부를 떠나 불공정 행위가 있다면 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서울옥션 최윤석 총괄 이사는 “외국과 경매사 출발 역사가 다르다”면서 “다만 양 영역이 공존해야 미술시장이 발전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젊은 작가의 작품 거래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말 양측은 경매 횟수를 연 4회 이내로 하고, 특수관계 화랑의 전속 작가 작품을 경매에 올리지 않으며. 작가 당 5점 내 경매를 실시키로 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적이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