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사토리(得道)세대의 정치적 함의

입력 2015-02-28 02:06

올해 초 번역서가 나온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 다룬 일본의 10대 후반∼20대 중반 사토리(得道·깨달음)세대의 원조는 우리나라 ‘삼포세대’다. 양국의 젊은 세대는 긴 불황과 구직난, 일자리를 가져도 저임금 비정규직이 대세인 상황에 대한 좌절을 공유한다. 차이점은 삼포세대가 월 88만원의 수입과 생활고 탓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데는 어떤 슬픔이나 안타까움이 깔려 있는 반면 사토리세대는 절망 속에서도 ‘월수입 100만원으로도 행복하다’고 안분지족한다는 데 있다.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사토리세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에 돈과 출세를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삼포세대 혹은 ‘88만원 세대’는 경쟁과 배제의 시스템, 부당한 차별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승자독식주의에 적응하기 위해 ‘닥치고 자기계발’에 매진해 왔다. 이는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저서에서 묘사한 ‘괴물이 된 20대 청년’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삼포세대 가운데서도 새 기류가 감지된다. 더 벌기 위한 경쟁 대신 덜 일하고, 덜 벌어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 ‘지금 여기서의’ 작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젊은이들, 즉 ‘달관세대’를 주변에서 더러 볼 수 있다. 일본을 닮아가는 것일까. 그러나 일본과 달리 차별과 임금을 비롯한 격차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남들의 시선에 예민한 한국 젊은이들의 소소한 행복 추구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달관세대는 그들이 사회관계 속의 피해자라는 정치의식이 아직 약하다.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경쟁과 탐욕을 거부한다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자장비와 자동차 등 상당수 재화의 소비·교체 거부 등이 집단적으로 펼쳐질 경우 산업계와 정부로서는 난감한 처지에 빠질 것이다. 조직적 보이콧(불매운동)의 파장은 성장 동력의 저하 차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근년의 저출산, 주택구입 기피 현상 등은 물론 의도적으로 집단화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집단 보이콧이 된 사례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