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폐지-헌재 ‘위헌 결정문’ 분석] “性에 대한 국민 의식 변화 못따라간 낡은 법”

입력 2015-02-27 02:14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6일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간통죄 위헌심판 선고를 준비하며 자리에 앉아 있다. 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김지훈 기자

간통죄 위헌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 7명 중 다수(5명)는 간통죄의 ‘시대적 소명’이 다했다고 판단했다. 간통죄 처벌 규정은 더 이상 혼인생활 유지나 간통행위 억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반면 다른 2명은 간통의 법적 규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처벌 범위·정도를 위헌 이유로 제시했다. 논란이 많았던 만큼 재판관의 위헌 의견조차 이렇게 두 갈래로 갈렸다.

다수 의견을 낸 박한철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국민의 성(性)의식 변화에 뒤처진 ‘낡은 법’으로 규정했다. 혼인한 남녀의 정조 유지와 일부일처제 관념이 우리 사회 도덕 기준의 하나로 정립돼온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재판관들은 “부부간 정조의무 보호라는 법익 못지않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성과 사랑을 형벌로 통제할 게 아니라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간통죄 처벌 조항의 실효성이 없다는 구체적 분석을 제시했다. 간통죄 고소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에야 가능하다. 고소하는 순간 가정은 파탄을 맞게 되는 셈이다. 간통 행위자가 처벌을 받든, 고소가 취소되든 간에 이미 얼굴을 붉힌 부부가 다시 결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형사처벌 과정에서 부부갈등이 더 심화되곤 한다. 간통 처벌로 가정을 보호한다는 논리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재판관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간통행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한다는 억제효과에도 의문을 표했다. 사랑에 의한 간통이라면 불법을 무릅쓰고라도 간통을 범할 가능성이 크다. 위헌의견 중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표현에 따르면 현재의 배우자보다 매력적인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경우와 기존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만난 새로운 사랑의 상대가 대표적이다. 애정에서 비롯되지 않은 간통도 현재 성매매 행태 등을 보면 예방효과는 없어 보인다는 게 재판관들의 결론이다.

실제 간통죄 조항의 예방효과를 증명하는 자료도 없다. 되레 간통죄로 접수되는 사건은 매년 줄고 있다. 고소 취소가 많아 처벌 기능은 현저히 약화된 상태다. 성도덕이 문란해질 것이란 우려에도 “간통죄를 폐지한 나라에서 그런 통계가 나타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실효성 없는 간통죄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간통죄 고소와 취소는 간통행위자의 배우자만 할 수 있다. 간통 행위자와 그 상대방의 법적 운명이 행위자의 배우자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셈이다. 예컨대 혼인관계에 불성실했던 사람이 배우자의 일탈을 약점 삼아 이혼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에게 금품을 뜯어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제시하면서도 간통죄 존재의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두 재판관은 “간통은 일부일처주의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해도 법적 규제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간통의 정도나 유형을 판단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처벌토록 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혼 상간자나,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난 상태에서 간통을 저지른 사람들까지 같은 수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 재판관은 간통죄로 고소할 수 없는 경우인 ‘배우자가 부추기거나 용서한 때’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