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폐지… 배우자 ‘바람’ 처벌 못한다

입력 2015-02-27 02:51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6일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간통죄 위헌심판 선고를 준비하며 자리에 앉아 있다. 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김지훈 기자
헌법재판소가 형법(刑法)에서 간통죄를 지웠다. 기혼자의 간통 행위를 더 이상 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됐다. 부부간의 ‘성(性)적 성실의무’는 이제 윤리·도덕이나 사적 영역의 문제로 남게 됐다.

헌재는 26일 재판관 7(위헌)대 2(합헌) 의견으로 형법 제241조(간통)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선고와 동시에 간통죄는 효력을 잃었다. 1953년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될 때 조문으로 만들어진 지 62년 만이다. 그동안 간통죄로 처벌된 이는 10만명에 달한다.

박한철 헌재소장을 비롯한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간통죄 처벌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전통적 성도덕이나 부부간 정조의무 보호라는 사회적 법익보다 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에 무게를 둔 결정이다. 이 5명의 재판관은 “간통이 비록 비도덕적 행위라 할지라도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형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사회 구조와 성에 대한 국민 의식 변화, 세계적인 간통죄 폐지 추세, 혼인제도 유지를 위한 간통죄 처벌의 실효성 상실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이혼 수단이나 상대방에 대한 공갈 목적으로 악용되는 부작용도 지적했다.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은 간통죄 처벌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법 조항의 문제를 들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김 재판관은 미혼자 등 성적 성실의무가 없는 간통 행위자까지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과잉 행사라고 봤다. 강 재판관은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宥恕·사후 용서)한 경우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죄질에 관계없이 모든 간통 행위자를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것은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정미 안창호 재판관은 “간통과 상간 행위는 혼인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배우자와 가족 구성원에 대한 유기 등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범죄”라면서 합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그간 거듭해서 합헌 결정을 내려온 점을 들며 선례를 뒤집어야 할 사정 변경이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간통죄는 제정 당시부터 존치와 폐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헌재는 1990∼2008년 네 차례 심판에서 모두 간통죄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