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파일럿’의 세계] 시험 비행, 목숨 건 비행

입력 2015-03-14 02:12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 임재열 중령이 지난달 25일 시험비행을 마치고 격납고를 걸어나오고 있다.제52시험평가전대 제공

테스트 포인트(시험점검항목) 원, 레디” “클리어” “이상 없음. 다음 단계 진입” “테스트 포인트 투, 레디” “클리어” “속도, 5∼10노트 빨랐다. 다시….”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에서는 하루에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비행 중인 전투기와 지상통제소 간 숨 가쁜 대화가 오간다. 시험비행 조종사(테스트 파일럿·Test Pilot)와 지상 시험감독관은 조금도 쉬지 않고 1시간 이상 ‘지시’와 ‘진행사항 보고’를 주고받는다. 그 사이 전투기에 부착된 센서들은 시시각각 조종사의 작동 상황과 항공기 움직임을 지상통제소 컴퓨터로 전송한다.

제52시험평가전대는 군이 사용하는 국산 항공기와 공대지 미사일, 레이더 등 각종 무기체계의 시험을 전담하는 부대다. 이곳의 가혹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항공기는 비행할 수 있고, 무장체계도 장착될 수 있다.

임재열(42·공사 45기) 중령은 이 부대 베테랑 테스트 파일럿이다. 갓 태어난 항공기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 요구되는 작전 성능을 충족하는지 등을 시험하는 일을 도맡는다. 검증되지 않은 항공기를 조종하는 만큼 위험천만인 작업이기도 하다. 항공기술과 지원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1950년대는 1주일에 한 명꼴로 테스트 파일럿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들의 역사를 ‘피의 역사’라 부르는 이유다.

임 중령은 2005년 테스트 파일럿으로 선발돼 2009년부터 6년간 이 일을 해왔다. 비행경력 2000시간이 넘는 노련한 조종사이지만 시험비행 때면 새내기 조종사처럼 온몸의 신경이 팽팽히 곤두선다고 한다.

그날그날 수행해야 하는 테스트 포인트는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인 경우가 많다. 전력화를 앞둔 경공격기 FA-50의 시험비행 때는 완전무장을 한 상태에서 마하 2.0의 최고 속도를 유지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를 ‘추가 무장영역 확대시험’이라고 한다.

무장을 달면 그 무게와 부피 때문에 항공기 속도가 느려진다. 무기 주위의 공기저항이 강해지면 기체가 심하게 떨리게 된다. 자칫 항공기 날개가 부러지거나 기체 일부가 부서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는 기체가 균열 직전까지 가는 위험한 시험비행을 수십 차례 반복해 왔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비행기 내부의 센서들이 비명을 지른다. 성공한 시험비행을 마치고 활주로에 내려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한시름 놓는다. 마중 나온 지상요원들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험비행 후에는 긴 토의가 이어진다. 임무평가와 제대로 성능이 나오지 않은 원인,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임 중령은 시험비행 중 경험한 점을 세세히 설명하고 엔지니어인 시험비행 기술사들은 여러 수집 정보로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의견이 일치될 때도 있지만 격론이 오가기도 한다. 방안을 찾지 못해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도 한다.

테스트 파일럿은 공군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다. 하지만 목숨을 담보할 만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없다면 전투기는 존재할 수도, 제 성능을 발휘할 수도 없다. 그는 제 기능을 수행하는 항공기를 볼 때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지난달 25일 공군 52전대 281시험평가대대 대대장실에서 만난 임 중령은 “시험비행은 실전”이라고 말했다.사천=최현수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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