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중형 태풍이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강력한 초대형 태풍은 아니었지만 수백명 이재민과 수조원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에 산사태가 속출했다. 산을 지탱하던 소나무들이 사라진 뒤 산사태는 연례행사가 됐다. 주요 계곡과 하천에는 재선충병으로 말라죽은 소나무가 둥둥 떠다니고, 농경지는 산에서 내려온 토사로 가득 찼다. 바닷가 도시에는 강풍 피해가 집중됐다. 바람막이를 해주던 해송 숲이 없어지면서 초속 20m에 달하는 바람은 고스란히 마을을 덮쳤다.
#2010년대 후반 정부가 ‘재선충 방제’를 포기하면서 여름휴가 풍경은 단순해졌다. ‘산이냐 바다냐’의 행복한 고민은 옛 이야기가 됐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발을 담그고 수박을 먹던 풍경은 어른들만의 추억이다. 솔숲 향기를 맡고 싶다면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에 조성된 소나무 보호림으로 가야 한다. 소나무 보호구역은 매년 인산인해를 이뤄 예약제로 운영된다. 전국 약수터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산이 황폐해지자 물이 탁해졌다. 하천은 비가 올 때마다 황적색 토사를 한가득 머금는다. 수돗물 정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수도요금도 매년 뛴다.
소나무가 멸종한다면…
앞의 두 사례는 산림 전문가 등의 조언을 바탕으로 소나무가 멸종한 10년 뒤 한반도의 모습을 예측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피해 수준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우리 산림에서 37%를 차지하는 소나무가 없어지면 산의 생태계가 바뀌고 하천이나 평지의 생태계에도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반도 전체의 ‘생명 지도’가 바뀌는 것이다. 송편을 찔 때 활용하는 솔잎이나 약재로 쓰이는 송진, 농가에 짭짤한 소득을 안겨주는 송이버섯의 실종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방제하기 위해 훈증 처리를 하는 데 주목한다. 훈증 과정에서 사용되는 농약 때문에 토양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다 ‘전통의 상실’은 비용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장수와 지조,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왔다.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가 벚나무고, 중국이 대나무라면 한국은 단연 소나무다. 선조들은 추운 겨울의 세 벗이란 뜻으로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도 불렀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사랑했기에 시조와 회화의 소재로 애용했다. 궁중 예술의 걸작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사회의 풍류를 담은 신윤복의 ‘청금상련(廳琴賞蓮)’이나 ‘송하남녀(松下男女)’ 같은 작품에도 소나무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소나무가 사라진다면 한국인을 묶어주는 중요한 ‘코드’ 하나가 사라진다.
일본은 ‘몰라서’, 한국은 ‘알고도’
재선충병 방제를 포기한 일본과 우리는 처지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멸종한다면 일본에서 병충해로 벚꽃이 사라지는 충격과 비견될만하다.
더욱이 일본은 재선충을 막을 겨를이 없었다. 일본 재선충은 1900년대 초반 북미지역에서 나가사키로 상륙했다. 이유 없이 소나무가 말라죽는데 70여년 동안 원인을 찾지 못했다. 1970년대에 재선충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이미 손쓸 수 없이 퍼진 상태였다. 그사이 국립공원 등 주요 지역에 있었던 소나무가 다른 나무로 대체됐다.
우리나라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확인됐다. 일본과 달리 소나무가 주요 수종이기 때문에 재선충의 확산 속도는 더욱 빠르고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재선충의 위력을 알고도 사실상 방치해 병을 키웠다는 점에서 일본과 차이가 있다. 일본 재선충 권위자인 교토대 후타이 가즈요시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재선충 피해지역을 둘러보고 “한국은 2015년에 재선충을 잡지 못하면 일본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 산림청
산림청은 최근 재선충의 전국적 확산 이유를 자연적·인위적 요소 두 가지로 판단하고 있다. 자연적 요소로는 여름철 평균기온 상승, 예년보다 적은 강수량을 꼽는다. 이 때문에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활동이 왕성해졌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질수록 재선충 위협이 더 거세질 수 있다. 또 산림청은 방제 현장에서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인위적 요소임을 인정했다(국민일보 2월 23일자 1·10면 참조).
산림청은 매개충이 재선충을 옮기기 시작하는 봄이 되기 전에 죽은 소나무를 모두 수거하겠다고 강조했다. 훈증처리를 줄이고 최대한 수집해 파쇄·소각하는 식으로 방제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페로몬으로 매개충을 유인해 죽이는 등 방제법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이렇게 2017년까지 재선충을 완벽하게 몰아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림청도 앞으로 3년 동안 방제에 실패할 경우 한반도에서 소나무 멸종이 현실화된다고 본다. 산림청 관계자는 “방제품질을 높이기 위해 올해 방제예산으로 국비 661억원을 배정받았다. 방제에 동원되는 인력이 하루 5000명 규모이며 하루 1만3000그루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면서 “특히 피해가 극심한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방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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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27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