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는 지난달 15∼22일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학생들과 함께 베트남 쿠케마을을 찾았다. 한 교수가 이곳을 찾은 건 벌써 아홉 번째다. 2007년부터 매년 한 번씩 이곳을 찾아 각 가정에 빗물 시설을 설치해 왔다. 올해는 현지 토목공학자와 정부 관계자도 만나 한국의 빗물 기술을 전수했다.
쿠케마을은 수도 하노이에서 남서쪽으로 15㎞ 떨어진 곳으로, 인구는 약 5000명이다. 상수도가 설치돼 있지 않아 모든 가정이 비소에 오염된 지하수를 퍼 올려 생활용수로 쓴다. ℓ당 비소 함유량이 베트남 당국의 기준치인 0.05ppm을 넘어 음용수로 부적합하다. 인근에 하천이 있지만 하노이 공장지대에서 나온 폐수로 오염된 데다 1인당 월 소득이 80만동(약 4만원) 수준이어서 생수를 사먹을 여유도 없다. 하지만 현재는 가정의 70% 이상이 빗물 시설을 설치해 식수로 이용한다.
사업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현지주민의 신뢰를 얻는 게 관건이었다. 초기에는 한국에서 고가의 최신장비를 가져가 직접 설치했다. 신축성 있는 튜브 형태의 설비는 무게가 10㎏에 불과해 운반이 편했다. 하지만 장비를 본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뜻밖에도 부정적이었다. 조금만 고장이 나도 수리할 방법을 알 길이 없다는 이유였다. 주민들은 “그걸로는 안 된다”고 이구동성이었다.
한 교수는 묘안을 짜냈다. 2011년 그는 베트남 현지에서 비슷한 기능의 장비를 구매해 설치했다. 현지인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눈에 익숙한 기계가 집에 놓이니 반겼다. 현지에서 생산한 장비인 만큼 고장이 생겨도 현지인들이 수리해서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현지주민 인식이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지난해였다. 연구팀은 마을 유치원에 1t 규모의 빗물 시설을 설치했다. 이전까지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비소 섞인 물을 먹일 수가 없어서 하노이에서 생수를 사다 먹였다. 매달 120∼150달러(약 13만∼16만원) 정도가 물값으로 나갔고, 가정마다 빠듯한 살림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나마 여러 곳에서 취수한 물에 소독약을 탄 저가의 물이었다. 하지만 유치원에 빗물설비를 설치한 뒤 식수 비용을 절약하게 되자 이들 사이에서 ‘빗물도 이익이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한 교수는 올해부터 베트남 당국 등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베트남 정부는 당장 주민들이 비소 중독에 걸려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며 “이러한 이점을 잘 홍보해 현지 관료와 정치인을 설득하려 한다. 베트남 전국에 빗물 시설을 설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물 부족’ 대안을 찾아서] 아이가 먹는 물 깨끗해지자 ‘마음의 문’ 열었다
입력 2015-03-14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