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파일럿’의 세계] 하늘의 사선을 넘나든다…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를 가다

입력 2015-03-14 02:02
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생활하는 시험비행 조종사들에게 일과를 끝내고 잠시 갖는 휴식시간은 꿀맛처럼 달다. 지난달 25일 281시험평가대대 대대장실에서 박지원 중령(왼쪽)이 모형 전투기를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임재열 중령(가운데)과 이동규 소령이 환하게 웃고 있다.제52시험평가전대 제공
국산 FA-50·TA-50 미사일 시험 제52시험평가전대는 1999년 창설된 후 국산 항공기는 물론 F-15K에 장착되는 무장체계 등 공군이 획득하는 대부분의 무기체계를 시험평가해 왔다. KT-1 기본훈련기, T-50 고등훈련기의 성능 점검은 물론 FA-50에 중거리 GPS유도탄을 장착하는 시험(위쪽 사진들)과 TA-50에서 AGM-65 미사일을 실사격하는 시험(아래 사진)도 실시했다.제52시험평가전대 제공
테스트 파일럿은 새로 만든 항공기나 특수한 용도로 개조된 비행기의 안전도와 성능을 점검하는 비행사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항공기 개발 과정에서 제작자와 설계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강한 도전의식과 전문성 없이는 수행하기 힘든 직업이다.

이들은 해박한 항공지식과 고난이도 비행훈련 경험을 지녀 미국과 러시아에선 우주비행사를 선발할 때 이들을 선호한다.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첫 우주인 닐 암스트롱도 테스트 파일럿 출신이다.

◇극한 위험을 자초하는 조종사=테스트 파일럿은 항공기 안전성과 생존성을 높이고 새로운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극한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항공기술이 첨단화돼 위험도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가장 위험한 직군으로 분류된다.

2006년 5월 28일 국산 고등훈련기 T-50 시제기가 추락할 뻔한 일이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소속 테스트 파일럿은 연료가 거의 떨어질 무렵 -3G(중력) 상태에서 마하 1.2로 비행하는 위험한 시험비행을 감행했다.

전투기는 -G 상태가 될 경우 엔진이 꺼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상태로는 비행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날 테스트 파일럿과 통제요원들은 한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T-50이 마하 1.2로 하강해 -3G 상태가 되자 비행기 엔진이 멈췄다. 테스트 파일럿은 침착하게 비상조작에 들어가 엔진을 되살렸다. T-50이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거꾸로 비행하는 배면비행 때 조종사 좌석이 이탈되는 위급한 순간도 있었다.

테스트 파일럿의 무모한 시도가 새로운 기술 개발을 선도하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테스트 파일럿 중 한 명인 미국인 척 예거는 1947년 벨 항공사가 만든 X-1을 몰고 최초로 초음속 돌파시험에 성공했다. 당시 ‘음속돌파를 하면 항공기가 깨진다’ ‘항공기는 견뎌도 조종사는 위험하다’는 등의 속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그가 조종한 X-1은 깨지지도 않았다. 비행을 마친 후 예거는 “초음속 돌파는 매우 편안했다”고 말했다. 이후 음속돌파는 상식적인 일이 됐다.

◇위험부담만큼 철저한 준비=시험비행은 매우 낯선 환경이나 위험한 조건에서 무리한 비행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당연히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수다. 공군 52전대 소속 테스트 파일럿들의 임무는 ‘테스트 노트’ 점검부터 시작된다. 테스트 노트에는 다음 날 시행할 시험항목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를 기반으로 시험비행이 실시되는 만큼 항목이 제대로 됐는지 꼼꼼히 점검한다. 시험 총괄 감독관과 임무 비행사, 안전추적 비행사, 기체 제작에 관여했던 엔지니어 등도 함께 점검한다. 시험항목에 대한 전대장의 최종 승인이 나야 다음 날 시험비행을 할 수 있다.

시험비행 조종사들은 52전대 바로 옆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비행시뮬레이션에서 사전훈련을 한다. 시뮬레이션은 기술 발달로 실제 항공기와 거의 유사하다. 1∼2시간 훈련을 한 뒤 다음 날 다시 한번 테스트 노트를 점검하고 시험비행에 나선다. 사고 위험성이 많은 비행시험을 하고 있음에도 52전대가 15만 시간 무사고기록을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철저한 사전준비 덕분이다.

◇혹독한 교육=“당신의 비행기는 늘 엉망이다.” 테스트 파일럿 교육의 제1명제다. 한번도 실제 사용되지 않은, 불완전한 신형 항공기에서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과 맞닥뜨려야 하는 이들의 운명 때문이다. 테스트 파일럿은 항공기 기체의 구성, 장착된 무기류는 물론 복잡한 항공역학도 자세히 꿰고 있어야 한다. 극한 상황을 맞았던 경험도 필요하다. 비행하면서 특이사항을 정확히 짚어내는 관찰력과 고장이 나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순발력,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때문에 이들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은 혹독하고도 길다. 지원자들은 전문비행학교에서 10개월간 이론과 실무를 배운다. 지원자는 어려운 항공이론을 배우고 이를 기반으로 시험비행을 한 뒤 보고서를 발표해야 한다. 교관들은 혹독한 지적과 비판을 한다. 매우 사소한 실수도 넘어가는 법이 없다. 실수가 곧 결함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52전대 테스트 파일럿 과정을 밟았던 이동규(35·공사 52기) 소령은 지난 10개월간 단 한번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여유가 없었다.

이 과정이 끝나면 2년여간의 시험훈련과 캐나다 보수훈련도 마쳐야 한다. 테스트 파일럿 한 명을 길러내는 데 약 3년이 걸린다. 그간 국내 교육으로 배출된 테스트 파일럿은 67명이다.

이 소령을 가르쳤던 281 시험비행대대 대대장 임재열 중령은 테스트 파일럿이 갖춰야 할 제1의 성품으로 인내를 꼽았다. 원하는 수준까지 항공기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수십번 수백번 비행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테스트 파일럿 학교 학생들의 표찰에는 ‘당신의 비행기는 엉망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는 심혈을 기울여 항공기를 만든 엔지니어들에게 가감 없이 비판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천=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