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엘리 시대가 끝나고 사무엘 시대가 동터 오는 전환기의 특징이다. 영적인 귀가 먹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드물었다. 영적인 눈이 멀었기에 신비한 환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사 6:9; 행 28:26) 무감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특징이 아닌가!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은 늙은 지도자를 폐하시고 어린 지도자를 세우신다. 그동안 아이 사무엘은 큰 스승 엘리를 섬겨왔다. 잉태에서 출산, 제사장 견습과 소명에 이르기까지 사무엘은 엘리에게 철저히 의존했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네 번째 가서야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내는 일조차도 엘리의 지도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이상을 본 뒤 처지가 바뀌었다. 거꾸로 엘리가 사무엘을 통해 자신의 운명에 대한 신탁을 들어야만 했다. 사부가 풋내기 제자에게 기대게 된다. 한나가 기도했던 그대로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삼상 2:7). 하나님은 말씀과 이상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던 것이다(마 11:25).
이와 같은 권력의 대이동, 지도력의 대전환이 일어났을 때 엘리와 사무엘은 공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사실 엘리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을 다스리지 못한 잘못 외에는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농사라고 했는데, 자식단속을 못한 이유 하나로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그럼에도 엘리는 한마디 토도 달지 않는다. 말씀에 순종하도록 제자를 길렀던 그대로 겸손히 순명의 본을 보일 뿐이다. 그랬기에 육신의 두 아들은 잃었지만 말씀과 이상의 전통을 이어 갈 영의 아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자 하나님은 그가 한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임을 알게 하셨고, 온 이스라엘이 귀를 쫑긋 세워 그의 말을 듣게 하셨다. 말씀과 이상이 값진 시대에 생명과 신비로 가득 찬 말씀이 온 천하에 울려 퍼져 사람들이 경청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엘리가 자신의 실패를 정직하게 자인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도 우선 엘리 세대부터 자신의 과오를 있는 그대로 시인해야 한다. 선배들이 자신의 허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정하는 그 순간 비로소 후배들이 말씀을 듣고 이상을 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말씀과 이상의 전통을 중단 없이 후대에 넘겨주어야 할 경륜 높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책무가 있다.
사무엘 세대는 말씀을 잘 듣고 이상을 잘 볼 수 있는 정결한 마음밭을 가꾸되, 특히 엘리 선배들의 노고를 존중해야 한다. 훌륭한 인격, 깨끗한 영성, 빛나는 도덕성 없이 영적 가뭄을 이길 수 없다. 엘리 세대의 잘못을 과감히 끊어내야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마냥 도외시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엘리는 엘리대로 저물어가는 시대의 조짐을 읽고 겸허히 과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원숙한 목회 지식과 경험을 패기에 찬 사무엘들에게 힘써 이어주고 사무엘은 사무엘대로 순수한 젊음의 영성 하나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오롯이 바로 서는 동시에 쓸쓸히 물러가는 엘리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낼 수만 있다면, 분명 이 땅 위에 말씀이 다시 들리고 이상이 보이게 되리라.
김흥규 목사(내리교회)
[시온의 소리-김흥규] 말씀이 드물고 이상이 보이지 않는 시대
입력 2015-02-27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