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순교 전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그가 800㎞를 넘게 홀로 순례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이는 두세 명뿐이었다고 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예수의 복음 때문에 철저하게 고독을 달래며 혼신의 사명을 다했던 한 제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다. 나 역시 그가 처절하도록 외로웠을, 그러나 한없이 감사했을 야고보의 그 길을 2012년 1월에 달포 남짓 따라 걸었다.
순례 이후 처음 맞는 휴일. 스페인 레온시 산 마르코스 광장에서 열리는 토요시장을 찾았다. 총천연색의 신선한 과일이 수레마다 가득하고, 한쪽에선 꽃을 든 남자들이 호객 행위를 했다. 광장 뒤편으론 만물 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클래식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부터 최신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 주인과 오래도록 숨을 공유했을 각종 장신구와 생활물품들이 새로운 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를 발하는 것과 되레 효용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공존하는 장터엔 옅은 긴장감이 서려 있다. 입김을 내지 않고 거래되는 법은 없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입김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자 본질이다.
휴일의 여유를 만끽하며 정처 없이 골목을 배회하다 너른 레갈 광장을 만났다. 광장 끝에는 고딕 양식의 무류한 레온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머다랗게 보이던 교회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위풍당당함이 더해진다. 외양도 외양이지만 입구에 들어서니 알 수 없는 위엄 앞에 촐싹대던 성정이 곧 시그라졌다. 절대자의 존재 앞에 이곳으로 발길이 끌려온 이유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리라.
복음삼덕(福音三德). 예수가 복음적인 삶을 위해 가르친 세 가지 덕행이 있다. 청빈하게 살 것, 정결하게 살 것, 진리를 따라 살 것. 그리고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지킨 언행은 단 한 단어를 필요로 한다. ‘사랑’이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했지 않았던가.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와 흐느낌의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들이 회개하는 이유는 예수의 가르침을 모르는 무지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진리를 정말 잘 알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부터 기도하라.’ 광야를 다니던 내가 삼는 기도의 방법이다. 나부터 기도하면 사사로운 욕구 충족을 위한 기복주의로 흐르기 쉽다. 번영신학의 정점에서 때론 하나님은 곧 ‘소원 자판기’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은혜를 세상의 가치로 재단해 값싸게 만드는 것은 그의 진리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직무유기다. 그래서 멀리부터 기도한다. 물리적인 거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소외된 이웃뿐만 아니라 어쩌면 부모, 이웃, 친구가 가장 멀리 있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도하다 스스로를 위한 차례가 오면 자신의 문제는 되레 작아 보일 때가 있다. 외롭고, 힘들어 기도하려 했는데 오히려 위로와 감사가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감사와 행복을 다 헤아리지 않은 채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건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할 인생의 주도권을 세상에 빼앗기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그런 마음에 기도를 통해 무엇인가를 구하기보다 자신을 저울질해보았다. 단 한순간 뜨거운 사랑이었는지 점검해보는 것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정적과 침묵으로 가득 메워진 교회에서 유일하게 탄성이 터지는 공간이다. 빛의 따스함이 세심하다. 그 빛은 거룩해서 상한 마음을 만져주고, 교만함을 털어내게 한다. 눈물 없이도 뜨겁게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 그 빛을 바라보며 마침내 저울추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다.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인생에 다시 한번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4)야고보가 순교 전 걸었던 길 -스페인 레온시에서
입력 2015-02-28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