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 전에 보낸 설이 아득하다. 설에서 보름까지는 다 설이라 했는데 그것도 너무 낯설다. 시간이 거짓말 같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다. 내 고향에는 만두가 없다. 설날에는 어김없이 알떡국을 먹었다. 설 전날이면 어머니는 긴 가래떡을 뽑아 오시고 아버지를 뺀 식구들이 둥그렇게 모여 그것을 썰었다. 떡국이 설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너무 흔해 오히려 슬픈 김도 설날에는 화투짝보다 조금 큰 두어 장쯤 먹을 수 있었다. 제재소에다 정미소까지 하시는 아버지 공으로 부자소리를 들었는데도 김은 남자들 상에만 놓여 있었다. 기필코 저것을 맘대로 먹으리라, 그게 꿈이었다.
서랍 속에 잊혀진 채 누워있는 김을 보면 세월이 아득하다. 내 손주보다 훨씬 어릴 때 이야기다. 서울에서 결혼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김장 100포기는 기본이고 설이면 김치만두를 한 달이나 먹을 만큼 하는 것 같았다. 속 버무려 놓은 것이 맘으로는 덕유산처럼 높아 보였다. 만두귀신이 붙었나, 나는 속으로 꾸물꾸물 욕을 해대며 며칠을 만두를 빚었다. 내내 사흘을 만두만 먹는 남편에게서 밤에도 만두냄새가 났다. 그러다가 나도 만두를 좋아하게 되고 만두를 빚는 가족들의 둥그런 원을 사랑하게 되었다. 둥글게 모여 먹고 만들고 먹고 만들고 하는 사이 서로 흉도 보고 칭찬도 하고 지난날 섭섭한 이야기도 서로 풀면서 만두 속에는 가족사랑이 익어갔던 것이다.
지금은 만두를 사온다. 올 설에도 만두를 사면서 기억하기도 싫었던 그 시절을 잠시 그리워했다. 제일 그리운 것은 둥근 원이다 한쪽은 반죽을 밀고 주전자 뚜껑으로 둥그런 달을 만들면 속을 넣고 각자 자기 마음 같은 모양을 내는 할머니 남편 아이들…. 그때 웃음소리가 왠지 그리워지면서 뜻밖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 속에는 떠난 사람이 얼비친다. 명절에 이승을 떠난 사람도 함께하는 우리네 전통은 아름답다. 가족이야말로 눈물과 통하지 않는가. 미워도, 떠나도, 그리워도. 눈물이야말로 가슴을 뚫고 나오는 진심이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눈물
입력 2015-02-2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