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 대로변에서 70대 노인을 비롯한 일가족 3명이 엽총에 맞아 살해됐다. 용의자 강모(50)씨는 노인의 딸 김모(48)씨와 부부처럼 살며 동업하다 1년6개월 전 헤어졌다. 김씨는 전날 다른 지역으로 외출해 참변을 면했다. 경찰은 강씨가 김씨 가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강씨는 범행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계획된 엽총살인…김씨 직계만 골라 ‘조준사격’=강씨는 오전 6시25분 충남 공주경찰서 신관지구대에서 엽총 두 자루를 찾아갔다. 지난 23일 오후 3시21분쯤 맡겨둔 총이었다. 검은색 파카 차림으로 지구대에 들어선 강씨는 창구에 수렵허가증을 내밀었다. 무표정했고 별다른 말은 없었다. 당장 살인을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지구대 경찰은 말했다. 경찰이 내온 그의 총은 이탈리아제와 미국제로 길이 120㎝ 정도에 개머리판이 나무 재질로 된 사냥용이었다.
강씨는 승합차를 몰아 지구대에서 10㎞가량 떨어진 금암리로 갔다. 한국영상대학교로 이어지는 큰길 옆으로 식당과 편의점, 원룸, 노래방 등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김씨 가족이 4개 건물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강씨는 출근하려고 차에 탄 김씨의 작은오빠(50)를 먼저 엽총으로 쏴 살해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머리를 조준했다. 조수석에는 그의 아들(22)이 타고 있었지만 그대로 두고 발길을 돌렸다. 아들은 차에서 빠져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오전 8시13분이었다. 취재진이 확인한 흰색 SM5 차량 내부는 앞자리에 피가 흥건했고 가방과 서류 따위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조수석 유리창에는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총알구멍 2개가 뚫려 있었고 전면에 하얗게 금이 가 있었다.
다음 표적은 김씨의 아버지(74)였다. 그는 옆 건물 조립식 단독주택에서 아침밥을 먹던 중 총에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동거녀(57)가 함께 있었지만 이번에도 김씨의 아버지만 쐈다. 이어 찾아간 곳은 바로 옆 편의점. 김씨와 동거남 송모(52)씨가 운영하는 가게다. 강씨는 송씨 머리에 총을 쏜 뒤 시너로 편의점에 불을 질렀다. 취재진이 오후 1시쯤 살펴본 편의점은 실내가 새까맣게 탔고 커다란 유리창들이 모두 깨져 있었다. 건물은 앞쪽이 편의점, 뒤쪽은 주택이었다. 김씨는 강씨와 헤어진 뒤 이곳에서 송씨와 살았다. 전날 친구와 함께 계모임을 하러 경기도 수원으로 간 김씨는 참극을 피했다.
3명을 잇달아 사살한 강씨는 총을 든 채 달아났다. 경찰은 약 4㎞ 떨어진 도로 아래 금강천변 갈대숲에서 숨진 그를 발견했다. 머리에 총상이 있었고 엽총 한 자루가 배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실탄 32발을 소지하고 있었다. 차는 100m쯤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고, 안에 나머지 총 한 자루가 있었다. 경찰은 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치정·돈 문제 얽힌 듯”=강씨와 김씨는 2년6개월간 살다 헤어졌다. 혼담도 오갔다고 한다. 김씨는 강씨의 집이 있는 수원과 충남 공주를 오갔다. 경찰 조사에서 강씨는 이별 후 김씨 가족에게 편의점 지분을 요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번번이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김씨 가족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의점은 김씨 아버지 소유로 돼 있지만 운영은 김씨와 송씨가 했다. 김씨 아버지는 딸과 관계를 정리하는 강씨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3000만원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도 강씨는 편의점 지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강씨와 김씨 아버지가 요양원 건립 사업 문제로 갈등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마을 주민은 “요양원 사업을 위해 강씨가 7억∼8억원을 구해오기로 했었다. 그가 돈을 못 구해오고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김씨 아버지가 딸과 헤어지도록 한 걸로 안다. 그 상태로 원한이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자하 세종경찰서장은 기자회견에서 “애정과 재산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경찰은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숨진 김씨 가족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두 사람 관계는 예전에 깨끗하게 정리된 걸로 아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강씨가 술 많이 마시는 걸로 유명했다. 특별한 직업 없이 주식투자하고 그런 걸로 안다”고 말했다.
◇총기 관리 문제없나=강씨는 지난해 7월 30일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총기 소지 허가를 받았다. 이후 충북 단양과 제천의 수렵 허가를 받고 그해 11월 20일부터 사용했다. 이 총을 지난 23일 오전 7시28분 집 인근 태장파출소에서 찾아 신관지구대에 맡겼고, 이틀 뒤 다시 찾아 범행을 저질렀다. 수렵 허가증을 제시하고 총기를 받는 데 채 5분도 안 걸렸다.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 엽총은 수렵기간 외에는 집에 보관할 수 없고 경찰서 지구대에 영치하게 돼 있다. 이번 수렵기간은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올해 2월 28일로 강씨가 전국 어느 관할 경찰서에서나 엽총을 맡겼다가 찾을 수 있는 시기였다. 오전 6시∼오후 10시인 입출고 시간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사냥용 엽총이 살인 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총기 안전국이 아니라는 우려와 함께 총기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씨처럼 수렵용으로 출고한 뒤 범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막을 방법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미리 알고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총기 관리 강화의 필요성엔 동감한다”고 말했다.
세종=강창욱 황인호 양민철 이도경 홍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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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26 02:46 수정 2015-02-26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