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고 길쭉해지고….
최근 일반 책 사이즈와 다른 독특한 판형의 책들(사진)이 트렌드처럼 속속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판형’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스마트폰의 그립감과 가벼움을 살린 이런 판형은 주로 말랑말랑한 읽을거리인 에세이 분야에서 시도된다.
미국 재즈 트럼펫 연주자의 평전인 ‘마일즈 데이비스’(그책), 법정 스님과 작가 최인호의 생전 대담을 실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 19세기 프랑스 모더니즘시의 선구자 보들레르의 대표시집 ‘악의 꽃’(아티초크), 프랑스 사진작가 소피 칼의 사진에세이 ‘시린 아픔’(소담) 등등.
설을 전후해 우연의 일치처럼 쏟아진 이 책들의 공통분모는 정규 사이즈와 다른 판형이다. 보통 책은 신국판(148×215㎜), 4·6배판(127×188㎜) 위주다. 하지만 요즘 선보이고 있는 스마트폰 스타일은 출판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10x180㎜ 안팎의 사이즈다. 한마디로 작으면서 슬림하다.
출판사 측은 ‘손 안에 쏙 들어오는 느낌’을 살렸다고 입을 모았다. 여백 출판사 함영춘 주간은 26일 “분량이 짧지만 내용이 깊이 있고 사진이 많이 들어가 밀도 있는 편집을 위해 처음 시도해 보았다”며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는 실용성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아티초크의 박준 팀장은 “스마트폰들이 대체로 그립감이 좋은 1:1.6의 황금비율을 채택하고 있다”면서 “책을 내면서 여러 샘플을 만들어 이에 가장 근접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표지 다자인도 세 가지를 동시에 내놔 스마트폰을 살 때처럼 독자들이 고르는 재미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절판된 책을 새롭게 꾸며 낸 ‘마일즈 데이비스’도 마찬가지다. 그책 출판사 정상준 주간은 “스마트폰 케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스타일은 판형뿐만 아니라 경량화에도 신경을 썼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경우 예전 책은 800쪽이 넘는 분량에 신국판 양장본이라 무거웠다. 이번은 얇은 종이를 쓰면서도 하드커버를 없앴다. ‘악의 꽃’은 책 표지 날개조차 없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스마트폰처럼 지하철 등에서 한 손에 잡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출판시장은 스마트폰 때문에 독자를 잃어왔다. 그래서 독자 손에 스마트폰 대신 스마트폰 판형으로라도 책을 쥐어주려는 의도가 무의식적 으로 표출된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함 주간은 “디자인이 참신해서인지 20, 30대 젊은층이 관심을 보인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정 주간은 “크기는 스마트폰 기분을 살렸지만 표지의 비닐 코팅을 벗겨 종이책 질감은 더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한손에 쏙… 스마트폰 같은 책들
입력 2015-02-27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