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사이드-부인喪 JP가 남긴 ‘빈소 훈수’] “정치는 허업” 뼈있는 조언

입력 2015-02-26 02:33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부인 박영옥 여사 발인식을 마친 뒤 서울 신당동 자택 앞 노제를 위해 떠나는 운구행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영세(永世) 반려’를 영원히 떠나보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빈소 훈수’를 통해 정치와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다. 현대사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은 구순의 노정객이 남긴 충고와 조언은 두고두고 회자될 전망이다.

김 전 총리의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의 발인은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오전 5시50분쯤 도착한 김 전 총리는 잠을 설친 듯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었다. 고인의 가족들은 흰 국화가 가득한 영정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가족들이 두 번 절하는 동안 거동이 불편한 김 전 총리는 휠체어에 앉아 모자를 잠시 벗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상여는 김 전 총리의 신당동 자택 앞 골목으로 향했다. 고인의 행적이 깃든 자택 앞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묵묵히 장례 절차를 지켜보던 김 전 총리도 고인의 영정을 잠시 받아들고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고인의 시신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돼 충남 부여의 가족묘원에 안장됐다.

닷새간 빈소에는 각계 인사들이 찾아와 슬픔을 나눴다. 김 전 총리는 정치권 후배들에게 격려와 충고를 동시에 쏟아냈다. “정치는 잘하면 국민이 그 열매를 따먹지만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이라거나 “정치인은 국민을 호랑이, 맹수처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겠다고 하면 교도소밖에 갈 데가 없다”는 말도 유명세를 탔다.

맞춤형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는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건의 드리고 ‘대통령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차기 대선 주자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는 “정상은 외롭고 괴롭고 고독한 자리이니 박근혜 대통령을 잘 도와드리라”면서 “그러면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만나서는 “대통령 단임제로는 큰일을 못 한다”며 “난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다 망한 사람이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빈소를 찾은 것을 놓고 “정치사에 남을 화해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말이 나왔다.

김 전 총리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가만 보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한 계단 낮춰 보고 있다. 아직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줬다는 의견이 많다. 아내가 숨을 거두기 직전 입맞춤으로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사진은 화제가 됐다. 한 조문객은 “김 전 총리는 부부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