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반목이 도를 넘고 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의 해묵은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치과에서 일하는 치과위생사와 간호조무사는 업무범위를 놓고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24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대국민 홍보의 일환으로 배지를 제작, 전국 2만여 회원이 진료할 때 패용토록 조처했다고 밝혔다. 지름 7.5㎝ 크기의 이 배지에는 ‘한의학은 이 시대와 함께하는 현대의학입니다’ ‘더 정확한 진단, 안전한 치료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의사협회는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홍보하고 나아가 대국민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배지를 제작, 배포키로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같은 날 ‘의료 전문성이 반영되지 않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은 국민건강에 막대한 위해를 가하게 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언론에 뿌렸다. 의사협회는 이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원점에서 학문적 원리와 공정한 법리적 관점에 따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엄중히 판단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치과위생사와 간호조무사 간 영역 다툼도 심각하다. 정부가 2011년 11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의기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치과위생사의 업무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치과 근무 간호조무사의 역할은 그간의 관행을 반영하지 않고 종전과 같이 그대로 둔 게 발단이 됐다.
현재 치과위생사에게 법적으로 부여된 직능은 ‘치석 등 침착물 제거, 불소 도포, 임시 충전, 임시 부착물 장착, 부착물 제거, 치아 본뜨기, 교정용 호선의 장착·제거, 그 밖에 치아 및 구강질환의 예방과 위생에 관한 업무 및 구내 진단용 방사선 촬영 업무’ 등 9가지다.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치과 의료기관 중 치과위생사와 간호조무사가 모두 일하는 곳은 약 46%로 절반이 안 된다. 약 33%는 치과위생사만, 약 31%는 간호조무사만 근무한다. 그동안 치과에서 치과위생사와 간호조무사가 서로의 업무범위를 넘나든 곳이 67∼69%나 된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한치과위생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다음 달부터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됐으므로 적발 시 법에 따라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기법 시행령의 계도기간이 이달 말 만료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딱하기는 보건복지부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2∼3년 동안 이들의 집단 갈등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얽히고설킨 의료 제도와 인력양성 체계를 백지에 새로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난국이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상생과 공존의 길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최근 의료계의 잇단 갈등이 국민의 눈에 기득권 또는 밥그릇 지키기 싸움으로 비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계속 자기들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려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는 고사성어다.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당신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 국민건강을 볼모로 제 밥그릇 챙기려 서로 헐뜯기 바쁜 의료인들에게 외쳐보라 주문하고 싶은 말이다. 저 혼자 잘나서 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본다. 의료 문제는 더욱 그렇지 싶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기수] 상생·공존의 길은 없을까
입력 2015-02-26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