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호텔신라와 물품계약을 맺고 있었던 J사 대표 연모(56)씨는 호텔신라 측에서 앞으로 대금 결제를 전액 현금으로 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계약서에는 대금 지급 방법으로 ‘현금 및 전자어음’을 사용할 수 있다고 돼 있었으나 호텔신라는 어음 결제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당장 현금을 융통하기가 어려웠던 연씨는 호텔신라 영업과장 김모(45)씨에게 ‘황당한’ 요구를 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호텔신라에 지급해야 할 48억원을 당장 주지 못하겠다. 3월에는 사정이 나아지니 일단 허위 가공거래 방식으로 호텔신라 자금을 빼내 대신 갚아 달라’는 거였다. 단박에 거절할 만한 제안을 김씨는 수락했다. J사가 부도를 내 50억원에 가까운 돈이 호텔신라에 지급되지 않을 경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김씨는 J사 담당자였다. 사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고 부서 내 인사나 승진 등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김씨는 이 ‘위험한’ 거래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그해 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범행을 시작했다. 김씨는 호텔신라의 전산 직판시스템에 접속해 물품 구입내역과 수량, 단가 등을 허위 입력해 마치 물품을 산 것처럼 꾸몄다. 평소 거래했던 몇몇 회사를 가공거래에 끌어들여 허위 거래명세표와 전자세금계산서를 제출받았다. 호텔신라는 이들에게 속아 그해 9월 말까지 18차례 56억원을 물품구매 대금으로 지출했다. 지출된 돈 중 48억원은 돌고 돌아 J사 명의로 호텔신라에 다시 입금됐다. 나머지 8억원은 허위 거래에 따르는 부대비용과 수수료로 지출됐다. 이 사기행각은 결국 수사기관에 발각됐고, 이들은 지난해 7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부장판사 윤승은)는 25일 김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연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거래업체로부터 비상식적인 제안을 받을 경우 정당한 방식으로 회사의 이익을 도모해야 함에도 회사와 거래업체, 개인의 승진 등 모두에게 득이 될 거라 믿고 회사를 기망하는 가공거래에 관여했다”고 판시했다. 쌍방이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단독] 담당 거래처 부도 땐 승진 물먹을까봐… 회삿돈 빼돌려 대신 갚아준 호텔 직원
입력 2015-02-26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