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표절, 예전엔 엄하지 않았다고? 조선시대에도 따졌다”… ‘표절론’ 출간한 남형두 교수

입력 2015-02-27 02:24
논문이나 책,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곁에 두고 봐야 할 책이 나왔다. 남형두(50·사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표절론’(현암사)이 그것이다. 표절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는 국내 처음이다. 표절에 대한 국내외의 학술적·법적 논의를 검토하고 다양한 판례를 분석해 출처 표시, 자기표절/중복게재, 공동저자 기재 요건, 검증시효 등 여러 쟁점들을 다뤘다.

“학자들이 표절 연구는 기피한다. 누가 누구를 지적할 수 있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표절 문제를 꺼내면 왕따가 되거나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다. 학계에서 표절은 판도라 상자 같은 것이다.”

그는 왜 위험한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까? 남 교수는 지난 25일 “학자들은 침묵하고 비전문가들이 표절 검색 소프트웨어를 들고 여론재판 식으로 표절 논란을 주도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표절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표절에 대한 학계의 침묵이나 방조는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과정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장관 후보가 된 학자라면 대체로 해당 학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아니냐. 그런데 그 학자의 표절 논란은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처음으로 제기된다. 그러면 그 학자가 교수로 임용될 때, 부교수나 정교수로 승진할 때, 학계에서는 표절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얘기 아니냐.”

표절은 더 이상 학자나 고위 공직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 연예인, 방송인, 유명 강사, 운동 선수, 종교 지도자 등 학위논문을 가진 모든 공인들의 문제가 됐다. 병역에 이어 표절이 공인들의 윤리성을 재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표절을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너무 거칠거나 가볍다는 게 남 교수의 지적이다. 주로 비전문가들에 의해 표절 논란이 제기되고, 정파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당사자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흐지부지된다는 것이다.

“요즘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자신이 이전에 쓴 논문의 일부를 새 논문에 가져다 쓰는 ‘자기표절’인데, 선행논문과 후행논문을 놓고 소프트웨어를 돌려서 같은 부분이 많으면 표절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후행논문에 선행논문과 겹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해도 선행논문과 다른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서 학문적 기여가 충분하다면 표절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는 표절 판정에서는 “얼마나 같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다르냐,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그건 표절 검색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표절을 저작권침해와 동일시하는 오류도 흔히 나타난다. 저작권침해는 법적 개념이지만, 표절은 윤리적 개념이다. 또 저작권침해의 피해자는 저작권자에 국한되지만 표절의 피해자 범위는 독자, 동료, 학계 등으로 확대된다. 남 교수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논문 표절 논란을 예로 들었다.

“표절 논란이 터지자 오 목사는 원저자로부터 사후 사용 동의를 얻어냈다. 본인 허락을 받았으니까 저작권침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표절 책임까지 자동적으로 면해지는 건 아니다. 만약 오 목사가 표절을 했다면,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담임목사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남 교수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2005년부터 로스쿨 교수로 변신, 지적재산권과 저작권법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산하 표절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표절론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정직한 글쓰기’라는 차원에서 표절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절을 해서라도 내용이 좋으면 평가를 받는 게 그동안의 학계 풍토였다. 그러다 보니 학문 기성세대 중에서는 누가 표절에서 자유롭냐고 역공을 하거나, 당시엔 표절 기준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얘기다. 조선시대에도 학자들은 표절을 비판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그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 쓰는 짜깁기식 글쓰기가 늘고, 편집의 힘을 강조하는 ‘에디톨로지’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출처 표시 등 표절금지 윤리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내가 가져다 쓴 자료들이 어디서 왔는지 밝혀야 된다. 에디톨로지도 성공하려면 각주가 있어야 한다. 이 자료가 어디서 나왔는지, 이 주장이 본인 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 이게 근거가 있는 건지 아닌지 등을 독자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글이 진실성과 권위를 가질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더더욱 ‘각주 있는 글쓰기’ ‘근거를 밝히는 글쓰기’ ‘정직한 글쓰기’가 중요해졌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