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그만큼 했으면 됐다”

입력 2015-02-26 02:58

슈틸리케의 감동, 이주영의 불찰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용병술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지난 5일 휴가를 떠나기 전날 만났다.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직후 서툰 한국어 소감은 어떻게 나왔으며, 연장 혈투 끝에 아쉽게 질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슈틸리케는 당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라고 말해 감동을 줬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나왔다. “그런 결과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1대 0으로 질지, 몇 대 몇으로 질지, 아니면 이길지를…. 회견장으로 가면서 직접 썼습니다.” 그러면서 “연장전이 끝나고 우리 선수들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리 말했습니다”라고 부연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반전’이 일어난 것은 진정성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 초기만 해도 그는 당장 그만둬야 할 책임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팽목항에서 수염도 깎지 않고 장기간 숙식을 같이한 그에게 유가족들은 결국 이렇게 말렸다. “장관님, 그만큼 했으면 됐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날개를 다는 듯했다. 하지만 당으로 돌아오자 재반전이 일어났다. 원내대표 선거에게 무참하게 졌고 ‘세월호 이주영’은 국민들 뇌리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박근혜정부는 여전히 솔직하지 않다. 세금을 늘리기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고 흡연자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그게 아니란다. 연말정산을 한 월급쟁이 봉투에서 작년보다 수십에서 수백만원이 빠져나갔는데도 “우리 정부에서 증세는 없다”고 강변한다. 여당 내에서조차 가능하지 않다고 하는데도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만 한다.

우리 민족에게는 특이한 정서가 있다. 아무리 미운 상대라도 그가 진정성을 갖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용서해주고 보듬어준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 할 만큼 했다”가 바로 그것이다. 위 세 가지 사례는 정서를 이해한 경우와 그러지 못했을 때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슈틸리케는 정서를 알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졸전을 거듭한 대표팀을 6개월 만에 찬사를 받는 팀으로 바꿨다. 수준으로만 따지면 두 대회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부상선수가 속출했지만, 거듭된 연장전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은 감독과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할 만큼 했다.”

이주영은 동료들의 정서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민심이 들끓어 친박(親朴)으로는 안 된다는 게 다수 새누리당 의원들의 생각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뭘 원하는지 살펴야

가장 심각한 건 박근혜정부다. 슈틸리케의 감동이나 이주영의 불찰은 일시적이며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그러나 국민 정서를 도외시하는 정부는 막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왜 박근혜정부는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 걸까.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선,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에게 양질의 노후 서비스를 하기 위해선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다고, 욕을 먹으면서도 소통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했다면….

반대로 지금 선별적 복지를 하지 않으면 우리 아들과 딸들이 나중에 어마어마한 부채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설득했다면….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말이 국민들 입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1400만명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덕수의 이 한 마디에서 더욱 진한 감동을 받았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영화 주인공도, 외국인 감독도 하는데 왜 이 정부는 안 되는 것인가.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구성원들은 이 땅의 주인들이 뭘 원하는지를 근본부터 다시 살펴보길 바란다.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