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2년차는 ‘박근혜식 복지’를 펼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추진하려는 주요 정책마다 논쟁을 불렀고, 정부는 이를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복지 사각지대, 기초연금 공약 파기,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등 의료민영화 공방, ‘꼼수 증세’ 비판을 부른 담뱃값 인상, 어린이집 아동학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백지화 등의 문제로 1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버렸다.
집권 3년차도 논란으로 문을 열었다. 이번엔 ‘증세 없는 복지’가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1년 동안 각론으로 시끄러웠다면 지금은 복지정책의 기조가 뭇매를 맞고 있다. 복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만들어낸 구호에 스스로 발목이 잡힌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 증세, 없는 복지?=주머니 사정이 그대로인데 더 많은 곳에 돈을 쓸 수는 없다. 아껴 써야 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영역이 반드시 생긴다. 누군가에게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복지를 박탈해야 하는 일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다보니 받는 사람도, 못 받는 사람도 불만이 많은 정책이 만들어졌다. 각종 논란의 뿌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게 기초연금이다. 지난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기초연금 논란은 결국 1년 반 만에 ‘공약 파기’로 마무리됐다. 대통령 선거에서 내놓은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지원하겠다’는 약속으로 노인층 지지를 얻어냈지만 집권 뒤 말이 바뀌었다.
정부는 뒤늦게 재원을 문제 삼았다. 미래세대 부담을 우려하면서 ‘소득 하위 70%’ ‘소득 수준별 차등’ ‘국민연금 수급액에 따라 차등’ 등의 조건을 끼워 넣었다. 그 결과 시행 첫 달인 지난해 7월 20만원 전액을 받은 사람은 전체 노인의 3분의 1 수준(36.8%·약 235만명)에 불과했다.
‘박탈’의 문제도 생겼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만큼 생계비 수급액이 깎인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줬다 빼앗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초연금 받는 노인 10명 중 1명(약 39만명)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정부는 생계비와 기초연금을 모두 주는 것은 중복지원이라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가장 야심 차게 만든 복지정책이 가장 빈곤한 노인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를 정치에 이용해”=우리나라 노인 2명 중 1명(49.1%)은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이고(201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인빈곤율(47.2%)이 가장 높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를 정치에 이용하면서 1∼2년 반짝 성과를 볼 만한 정책을 내놓았다”며 “특정 계층에 강력한 사회복지는 다른 계층에 반(反)복지가 되는 걸 경계해야 하는데, 노인 표(票) 의식하다가 가장 소외된 계층에 가야 할 지원이 막히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1년여 전 송파 세 모녀가 ‘죄송합니다’란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그제야 비로소 사각지대로 내몰린 빈곤층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모, 자녀 등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최저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 117만명(2012년 기준 정부 추산)을 구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왔다.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역시 돈에 발이 묶였다. 지난해 11월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는 부양의무자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다. 소득기준만 조금 높여 이 제도 탓에 사각지대로 밀려난 빈곤층 13만6000명을 구제하는 데 그쳤다. 예산 부족이 이유였고, 당초 정부가 제시한 12만명 구제 방안보다 조금 진전된 정도다.
◇‘무상복지’라는 말장난=박근혜정부의 복지 논란은 역대 정권과 비교할 때 가장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증세 없는 복지’라든가 ‘무상보육’이라는 말로 유권자를 자극하면서 논의가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렀다는 지적이 많다.
복지를 계속 늘리다보면 세금이 더 필요해진다. 당연한 흐름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모든 복지는 세금에서 나온다. 정부가 복지제도를 ‘무상(無償)’이라며 생색내는 것은 세금을 낸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복지 확대는 체감하지 못하는데 세수 진작에 도움이 되는 ‘담뱃값 2000원 인상’을 강행하면서 꼼수 서민증세 논란만 커졌다. 정권 지지도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다.
무상복지 자체도 엉뚱한 쪽으로 논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나 기초생활보장제도처럼 소외 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는 함께 굴러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빠듯한 예산에서 ‘무상’ 쪽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변질됐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편과 선별 논쟁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는데 선거에서 자극적인 구호들이 나오면서 이분법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덜 겪어도 될 진통이 지나치게 오래 이어지는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정권 3년차의 과제”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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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25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