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너에게 ‘거품’, 내게 ‘구름’

입력 2015-02-25 02:20

얼마 전 7년간 함께 살던 친구와 떨어져 이사했다. 우리는 대학 때부터 친구였고 따로 같이 하는 일을 좋아했고 결혼해 살더라도 한 동네에 살자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런 우리가 며칠 전 서로에게 언짢은 마음을 내비쳤다.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 발단은 문자메시지 때문이었다. 친구가 보낸 문자가 마음을 상하게 했고 그걸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오히려 내 태도가 부쩍 부정적으로 변해서 그게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오래전 친구와 함께한 배낭여행이 떠올랐다. 사막을 지날 때쯤 피부가 새로이 사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친구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폼클렌징을 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마을은 남아메리카의 자그마한 시골이라 슈퍼마켓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약국에 들어선 친구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박또박 폼클렌징을 발음해 보았지만 동양인을 처음 본 듯한 약사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는 세수하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가뭄 난 자기 얼굴을 가리켜 보았지만 허사였다. 잠시 후 종이와 펜을 꺼낸 친구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가 그린 그림은 폼클렌징을 사용하면 생기는 ‘거품’이었다. 하지만 약사도 그렇게 생각할까. 의외로 쉽다는 표정을 짓더니 약사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과연 그가 무엇을 들고 올지 궁금했다. 친구의 그림은 폼클렌징보다는 구름에 가까웠다. 하지만 약사가 내어놓은 것은 ‘솜’이었다. 조금 전 당당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친구는 허탈한 얼굴로 약국 앞에 진열된 ‘비누’를 샀다.

당신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하고 귀 기울이지만 전혀 그 뜻을 알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이해하거나 오해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행에서의 폼클렌징을 생각한다. 그건 우리 주변에 흔히 벌어지는 일로, 친구에게 거품을 일으키는 물건이지만 내겐 구름이고 누군가에겐 솜이 된다. 우린 여행 내내 그 비누로 세수도 하고 샤워도 했다.

곽효정(에세이스트)